킥복싱·주짓수, 레슬링 등 다양한 격투 기술이 사용되는 종합격투기(MMA: mixed martial arts)는 케이지의 문이 철컥 닫히는 순간 절대 피할 수 없는 한판 승부가 시작된다. 상대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쓰러진다. 선수 대기실에서 손에 테이핑을 감을 때부터 회피하고 싶은 두려운 마음이 엄습해온다. 그럴 때마다 열심히 싸우리라 다짐하며 마인드컨트롤을 한다. 그러나 윤호영(28) 소방관은 종합격투기를 즐긴다. "몸무게 계체량 측정 때 상대선수를 처음 만나는데, 그때부터 기세싸움은 눈빛으로 시작된다. 거친 눈싸움을 하면 도망치는 소극적인 경기를 할 수 없다. 즉, 내가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다. 더 화끈한 경기를 펼칠 수 있는 최고 자극제가 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29초 만에 승리 '소방관 파이터'
지난해 9월 8일 '로드(ROAD) FC 영 건스(YOUNG GUNS 44)'가 열린 대구체육관. 케이지에 오른 파이터는 플라이급 윤호영(28) 소방관이었다. 링 아나운서의 선수 소개와 눈싸움 뒤 경기가 시작됐다. 상대 선수는 일본 단체 워독 챔피언 타카기 야마토. 7전 전승을 기록하고 있는 유망주였다
1회전이 시작됐다. 예측한대로 타카기는 태클로 공격해왔다. 그러나 윤 소방관은 타카기의 엉덩이를 당겨 백포지션을 잡은 뒤 리어 네이키드 초크(Rear naked choke:상대의 등 뒤에서 팔로 목을 감아 조르는 것)로 제압했다. 29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타카기가 기절해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켰다. 완벽한 승리였다.

로드 FC에서 초크로 승리한 파이터 중 가장 빠른 시간에 승리한 파이터로 기록됐다. "한일전이라 꼭 이겨야 하기에 열심히 준비했다. 제가 레슬링이 약한데 상대가 그렇게 공격해올줄 알고 여러상황을 가정해 철저하게 준비했다. 아니나다를까 타카기가 시작하자마자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재빨리 타카기를 뒤로 잡아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항복을 받았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윤 소방관은 운이 좋았다며 겸손해 했다. "단 한 대도 안 맞았다. 지인이나 친구들은 경기를 보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렸는데, 29초 만에 싱겁게 끝나 표값 물어내라고 항의(?)했다. 그러나 가족들은 매를 맞지 않아 좋아했다"며 활짝 웃었다.
이날 경기로 윤 소방관의 전적은 8전 4승3패1무를 기록하게 됐다.

◆파이터에서 소방관으로
윤호영 파이터는 소방관이 된 지 1년(2018년 11월 임용)이 갓 지난 새내기다. 현재 대구서부소방서 태전119안전센터에서 화재진압 업무를 맡고 있다.
윤 소방관은 중학교 시절 격투기에 관심이 많아 학교 앞 체육관을 찾았다. 합기도를 하면서 타격기술을 가르치는 도장이었다.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 우승한 뒤 격투기에 흥미와 매력은 점점 더 커져갔다. 본격적으로 운동하고 싶다는 욕심에 무에타이 전문 체육관으로 옮겨 운동을 배웠다. 무에타이 선수로 활약하다 군 제대 후 2013년 종합격투기(MMA:(Mixed Martial Arts)로 전향했다. 2년 정도 MMA 아마추어 선수로 활동하다 2015년 프로로 데뷔해 승리했다. "기고만장했다. 두 번째 시합이 아랍에미리트에서 있었는데, 준비도 없이 경기에 임해 크게 다쳤다. 부모님도 말렸다. 그래서 집을 나왔다"고 했다.
결국 그가 선택한 일은 막노동. 일하면서 시합을 나갔다. 그리고 또 부상을 당했다. 생계도 막막했다. "부상으로 잠시 쉬고 있는데 소방관 친구를 통해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됐다. 그간 갈고 닦은 체력을 좋은 곳에 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시험을 준비했다"고 했다. 그리고 2018년 11월 소방관으로 임용됐다. "천직인 것 같다. 보람있는 일을 하는 것도 좋고, 운동을 겸할 수 있어 소방관이 된 게 너무 잘한 것 같다"고 했다.

◆ "일과 운동, 모두 하고 싶어"
윤 소방관은 주로 비번 날과 체력단련 시간에 운동을 한다고 했다. 복싱과 레슬링, 그라운드 훈련을 한다. 또 다른 선수와 함께 훈련을 하며 몸을 풀고 주짓수, MMA 스파링도 한다. "평소 체중이 68kg 정도 나가기 때문에 플라이급 한계체중( (56.7 kg)에 맞추려면 10여kg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운동은 필수"라고 했다.
윤 소방관은 일과 운동 두 가지 모두 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좋아하는 격투기는 물론 화재와 소방시설 분야의 공부도 꾸준히 해보고 싶다. 격투기 선수로서는 소방관의 강인함을 알리고, 현장에서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춰 소방관다운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윤 소방관은 지난 5일 아름다운 신부를 평생의 반려자로 맞이했다. "아내는 격투기를 하고 싶으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면서 "앞으로 아내와 상의해 출전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윤 소방관 왼쪽 가슴에는 한 인물이 새겨져 있다. 2014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동생이다. "형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이 미안하고, 또 항상 같이 있고, 같이 세상을 본다는 의미에서 새겼다"고 설명했다.

◆ 파이트머니 기부
윤 소방관은 승리로 얻은 파이트머니(Fight money)를 홀몸어르신, 기초생활수급자 대상 주택용소방시설 보급사업에 기부했다. "파이트 머니 100만원은 화재 대비가 취약한 분들에게 소화기와 단독경보형감지기를 설치해 드리기 위해 기부했다. 소방관으로서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부를 해보니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한다. 저의 어깨를 토닥여 줄 때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다음에 또 시합을 나갈 여건이 된다면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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