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하와이대학 도서관에서 친해진 동갑내기 인도인 친구와 하찮은 일로 서로 얼굴을 붉힐 만큼 실랑이를 벌인 적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 식사를 같이하기 위해 인도 음식점에 들어갔다. 식당 주인과 상의하여 메뉴를 정하기 위해 카운터에 다가가며 그의 가방을 내 발 옆 바닥에 두었다. 그가 돌아와 맞은편 자리에 앉기에 내가 무심코 그의 가방을 내 발로 밀어 그의 곁으로 보내주었다. 그 순간 그가 발끈하며 "아니, 저주의 발로!"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에 내가 "뭐, 저주의 발이라고?"라며 대꾸했다.
그는 곧 이민족 간의 문화충돌 사건임을 깨달은 듯, 그가 화낸 이유를 조곤조곤 설명했다. 그의 설명 요지는 악명 높은 인도 신분제도를 인체에 상응시켜 해설하는 내용이었다. "인체의 발은 불가촉천민 달라트에 해당한단 말이야. 친구가 발로 내 책가방을 밀친 행위는 불가촉천민이 최상층 신분 브라만에게 발길질을 한 행위에 비견할 수 있어." 이에 어안이 벙벙해진 내가 무슨 근거로 그런 억지 이론을 펴는지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약 3천500년 전까지 중앙아시아 초원지대를 떠돌며 유목생활을 하던 서양 혈통 아리아족이 인도에 쳐들어와 온순한 동양 혈통 정착 농경민족 드라비다족을 정복했다. 서양 혈통의 백인 아리아족이 동양 혈통 황갈색 드라비다족을 지배하기 위해 내세운 통치 이념이 인체 구조에 상응시킨 계급 구분이었다.
아리아족의 고대 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된 아리아 고대 경전 "베다"를 해설할 줄 아는 극소수인들에게 '브라만'이라는 최상층 계급을 부여하고, 이들을 사람 머리에 해당된다고 가르쳤다. 그 바로 아래 계급인 '크샤트리아'에게는 백성들을 관리하는 권한을 허용했다. 국왕을 비롯해 행정관료, 치안을 유지하는 군인, 경찰 등이 이 계급에 속하는데 인체로는 심장과 폐가 들어 있는 흉부에 해당된다고 가르쳤다. 그 아래 다수를 차지하는 평민 '바이샤'는 인체 복부에 상응한다고 가르쳤다. 그 아래 피정복민족 드라비다족은 '수드라'라는 천민계급에 처했다. 이들은 발로 뛰면서 지배계층과 평민들의 손발 노릇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중 최하 신체부위인 발은 신체 접촉도 금기시하는 불가촉천민에 상응한다고 가르쳤다.
이렇게 친절한 해설을 한 인도 친구가 자기의 해설에 수긍하느냐고 묻는 듯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기에 나는 이렇게 응답했다. "그 따위 견강부회적인 논리에 속아 3천 년 이상 동안 굴종적인 삶을 살아온 인도인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해." 그가 뜨악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기에 내가 이런 말로 한 방 더 먹였다. "모든 인간이 무지몽매하던 원시시대에 선각자인 체하며 자기 논리를 무지막지한 대중들에게 주입시킨 원시사회 규범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3천 년 이상 준수해 온 인도인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해. 인도인들은 왜 모든 인간, 심지어 신체부위까지 차등의식으로 바라보는지 모르겠어. 인도인들의 심리를 옥죄는 두 개의 사슬을 벗어던지지 않으면 인도는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 이에 그가 "인도인들의 행동심리를 옥죄는 두 개의 사슬이 뭔데?"라고 반문하기에 내가 이렇게 답했다. "인도인들의 행동심리를 옥죄는 첫째 사슬은 인체 구조에 비유하여 규정한 신분제도라 생각해. 이 신분제도의 기본 가정은 인체의 발이 영원히 머리가 될 수 없듯이 주어진 신분에서 영원히 탈피할 수 없다는 체념에 빠지게 하거든. 인도인들의 행동심리를 옥죄는 또 다른 사슬은 인과응보에 근거한 윤회사상이라 생각해. 이승의 수난은 전생의 업보라며 순종해야 하고, 내세에 더 나은 존재로 태어나기 위해서도 현세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논리이니 이거야말로 인도인들의 행동심리를 옥죄는 이중 사슬이 아니고 뭔가? 한국 역사에서도 그런 차별적 신분제도가 있긴 했어. 하지만 18세기부터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평등사상이 확산되었거든." 이렇게 하여 토론에는 지는 일이 없는 인도인 친구가 그날은 웬일인지 반격하지 않았다.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