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용섭의 북한 화첩기행]<11>북한에 가면 뭘 타고 다니지?

평양을 벗어나거나 다른 지역으로 갈 때는 주로 기차를 많이 이용한다.금강산 온정리에서 열차 화물칸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타고 가고 있다.
평양을 벗어나거나 다른 지역으로 갈 때는 주로 기차를 많이 이용한다.금강산 온정리에서 열차 화물칸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타고 가고 있다.

북한에서도 교통수단에 따라 여행의 질이 바뀐다. 비포장도로가 아직 많아 이동에 적잖은 시간이 걸리면 피로도도 그만큼 높아지기 마련이다. 수도 평양은 그나마 달랐다. 택시, 버스는 물론 지하철까지 갖추고 있었다. 개중에서 평양 지하철은 관광지라 할 만큼 이질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교통수단이라는 목적성 외에 방공시설 기능을 겸하고 있어서일지도 몰랐다.

평양의 지하철. 플랫폼에는 계몽용 벽화와 천정에 북한말로 떼불알이라고 말하는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다.
평양의 지하철. 플랫폼에는 계몽용 벽화와 천정에 북한말로 떼불알이라고 말하는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다.

◆평양의 지하철

평양에서 지하철을 탈 기회가 두 번 있었다. 2003년 방문 때는 '영광역'에서 '부흥역'까지 짧은 구간이었고, 지난해에는 '개선역'에서 '평양역'까지였다. 변한 것은 없었다. 기본적으로 평양의 지하철은 유사시에 대비한 방공호와 대피소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길이 100m가 넘는 에스컬레이터가 흔한 건 당연했다. 세계에서 가장 깊게 파내려갔다는 평양지하철은 에스컬레이터로 5분 정도 내려가야 할 만큼 깊었다.

지하철은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11시 30분까지 운행했다. 배차 간격이 출퇴근 시간에 3분, 그 외에는 15~30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전력난이 암초였다. 2003년 방문 때는 정전이 되기도 했다.

우리일행은 북한 안내원의 안내로 잠시
우리일행은 북한 안내원의 안내로 잠시 '영웅 영예군인자리' 에 앉아보았다.

많은 역이 있는 건 아니다. 평양의 남북을 가로 지르는 '천리마선'은 '부흥역'에서 시작해 7개역을 지나 '붉은별역'까지, 동서로 놓인 '혁신선'은 '광복역'에서 8개역을 통과해 '락원역'까지이어진다. 거리에 관계없이 동전을 개찰구 앞에서 투입한다. 내국인과 외국인의 이용요금이 다르다.

깊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지겨워질 때쯤이다. 플랫폼이 넓어 광장처럼 보이는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천장에서는 샹들리에가 화려하게 내려와 있다. 조롱조롱 달려있는 샹들리에 조명등을 북한말로 '떼 불알', 형광등은 '긴 불알'이라 한다며 안내원이 농을 건넨다.

플랫폼 광장 정면과 옆 벽면에 그려진 거대한 벽화가 웅장한 위압감을 준다. 찬찬히 살펴본다. 작은 타일조각으로 제작된 '만수대창작사'의 작가 공동작품이다. 만수대창작사는 북한 미술 분야 최고의 집단창작 단체다.

지하철 플랫폼 곳곳에는 샹들리에가 매달려있다.
지하철 플랫폼 곳곳에는 샹들리에가 매달려있다.

역마다 적절히 어울리는 벽화들이 인상적이다. 명랑하게 작업하는 소재의 그림들이 새마을운동 때의 역동적인 그림과 닮아 한편으로는 정겹게 느껴졌다. 다만 주변에 계몽용 벽화와 선전문구들만 빨갛게 돋보인다. '주체조선', '민족의 태양' 등 김 씨 3대 부자의 우상 선전용 구호들이다.

일행들이 각자의 취향대로 여기저기 들여다보다 플랫폼으로 진입한 전동차에 올라탔다. 2003년 방문 때는 주민들과 분리된 별도의 객차에 탔는데 이번에는 주민들과 함께 탈 수 있었다. 막상 탄다고 한들 평양시민들과 가끔씩 눈만 마주칠 뿐 말해 볼 틈은 없었다.

우리 일행은 객차 한 쪽 끝자리에 앉거나 서서 갔다. 우리 지하철의 노약자, 임산부석 같은 자리에는 '전쟁 로병 자리'와 '영웅 영예군인자리'라고 적혀 있었지만 누구나 앉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안내원도 일행에게 '영웅 영예군인자리'에 앉아보라고 권했다. 긴장 속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저녁7시 무렵 퇴근길의 평양시민들.지하철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저녁7시 무렵 퇴근길의 평양시민들.지하철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지상의 교통수단

또 다른 교통수단으로는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대비해 생긴 택시가 있다.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에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에서 학생 대표를 보내 대한민국이 술렁였다. 그때 북한에 간 학생이 임수경 전 국회의원이고, 전대협 의장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어쨌거나 택시는 당시 외국인 전용이었다.

지금은 주민용 택시도 있다. 번호판 색상으로 구분한다. 1992년 일반 주민을 상대로 영업을 시작했지만 비싼 요금 탓에 택시 이용객이 드물었다고 한다. 사실 주민들이 가장 애용하는 교통수단은 트럭이다. 조수석이 아니라 짐을 싣는 공간을 이용한다. 짐짝과 함께 그곳에 올라타는 건 쉽게 볼 수 있다.

평양 고려호텔 네거리에서 여성교통안내원이 수신호로 신호등을 대신하고 있다.
평양 고려호텔 네거리에서 여성교통안내원이 수신호로 신호등을 대신하고 있다.

평양을 벗어나거나 다른 지역으로 갈 때는 주로 기차를 많이 이용한다. 이것 또한 자유롭거나 원활하지 않은 것 같았다. 1998년쯤 금강산 온정리에서 열차 화물칸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타고 가는 걸 그린 적이 있다.

북한은 유류가 부족해 석탄, 톱밥, 볏짚, 옥수수대를 연료로 한 목탄차를 이용한다. 화물차 적재함 앞부분에 보일러를 설치하고 연료를 태워 동력을 얻는 방식이다. 세계는 전기자동차, 수소자동차 시대로 가고 있는데 목탄차가 달린다. 자동차가 많아 교통체증을 일상으로 겪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 너무도 달라 문화 충격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독도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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