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 최북(1712-1786?) '서설홍청'

2020년 경자년 쥐해이다. 옛 그림에서 쥐가 단독 주연으로 나오는 그림으로 쥐 한 마리가 붉은 순무를 갉고 있는 '서설홍청(鼠囓紅菁)'이 있다. 쥐, 다람쥐, 햄스터 등 '이를 가는 부류'인 설치류(齧齒類) 동물은 앞니가 계속 자라므로 어떤 물건이든 갉아 이를 닳게 하는 생태적 특징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갉아대는 쥐를 굳이 그림으로까지 그린 까닭은 그 소리가 돈 세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부를 가져다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쥐는 평생 이를 가는데, 평생 돈을 세시라는 뜻을 그림으로그린 것이다. 십이지(十二支) 중에 1등인 쥐는 재물을 상징한다. 부지런히 먹이를 모아놓는 습성과 새끼를 많이 낳는 번식력 때문일 것이다. 붉은 무는 홍복(紅蔔)인데 큰 복인 홍복(洪福)과 발음이 비슷해 큰 복을 누리시라는 뜻이 된다. 심사정도 이런 그림을 남긴 것을 보면 어떤 본(本)이 있었던 것 같다.

작은 그림인데 인장을 4방이나 찍었다. 오른쪽 위에 주문타원인 '호생(毫生)'이 있고, '좌은재(坐隱齋)'로 서명한 아래로 '반월(半月)', '최씨(崔氏)', '칠칠(七七)'이 일렬로 찍혀 있다. 붓으로 먹고산다, 붓이 생동한다는 호생은 최북의 잘 알려진 호이고, 반월은 애꾸눈이었던 최북이 눈이 반 밖에 없다는 뜻을 이렇게 나타낸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칠칠은 이름인 북(北)을 둘로 쪼개 파자(破字) 해 스스로 못난이, 바보라고 한 것이다. 북으로 이름을 바꾼 것, 자(字)를 칠칠이라고 한 것은 자신을 온전히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과의 불화를 나타내는 것일 테다. 신분을 앞세우는 사회였고, 군자라는 윤리적 인간형 이외의 타입은 인정받기 어려웠던 시대였다.

이 그림은 최북의 호 좌은재를 알려준다. 옛사람들은 고상한 소일거리인 바둑을 손으로 하는 말 없는 대화라고 해서 수담(手談)이라고 했고, 바둑 두는 일을 좌은(坐隱)이라고 했다. 최북은 바둑 고수였다. 남공철(1760-1840)의 '최칠칠전(崔七七傳)'에 최북이 서평공자(西平公子)와 백금(百金)을 걸고 바둑을 두다 공자가 한 수 물러달라고 하자 바둑돌을 흩어버리고 다시는 그와 대국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성여도봉화염(性如刀鋒火焰)'이라고 한 칼끝 같고, 불꽃같은 뻣뻣한 성품은 왕실의 종친인 귀인(貴人)이라고 해서 물러서지 않았던 것이다.

12지는 원래 고대 천문학에서 시간을 표기하기 위해 만든 별자리 단위로 중국, 일본, 인도, 베트남, 네팔 등 여러 나라에 있다. 12마리 동물이 우주동물원을 구성하며 십이지의 징표로 대입된 것은 불교의 십이신장(十二神將), 도교 방위신앙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더 멀리는 인간이 동물을 숭배하던 토템사회의 흔적이라고 한다. 곰을 숭배하는 부족은 곰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믿었고, 다람쥐를 신으로 모시는 부족은 다람쥐를 조상으로 여겼다. 띠는 "그 사람의 심장에 숨어있는 동물"이다.

미술사 연구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