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나이가 들면 의사를 만날 일이 잦아지듯, 도시도 시간이 지나면 손볼 곳이 생겨난다. 1960년대 경제 근대화와 함께 탄생한 한국의 근대도시들에선 -사람이라면 40세 즈음이 되던- 2000년대 초 공공디자인 사업이 시작되었고, 60세인 지금은 뉴타운사업, 도시재생사업 등 도시환경 개선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명칭이나 규모, 세부 내용은 각기 다르지만, 지역 경제의 회복과 생활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정부(公) 주도의 공(空)간 개발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공공(公共)디자인이라고 불리지만, 생활 인프라를 개선하는 공공(公空)디자인 사업이다.
1980년대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적용한 미국 뉴욕시 지하철 사례를 보면, 공공(公空)디자인의 물리적 환경 개선은 지역의 긍정적 변화 요인인 것 같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까? 정부 주도의 공간 개발 사업들은 짧은 시간에 반듯한 도로와 쨍쨍한 건물의 별천지를 만들었지만, 변화의 시간을 10분의 1로 단축시킨 한국의 압축성장과 닮았다. 수필집 '삼십 년에 삼백 년을 산 사람은 어떻게 자기 자신일 수 있을까'에서 시인 김진경은 선진사회를 따라잡기 위해 "한국은 60년대 이래 30년 동안에 서구의 300년을 압축해 따라갔다" 그 맹렬한 속도 속에 스스로를 잃어버린 한국 사회는 통렬한 자기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별천지 개발이 반복되는 동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의견을 듣거나, 개발의 민낯을 살펴보는 것은 필요치 않았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공공(公共)의 이름으로, 정부 주도의 공공(公空)사업이 진행되어 왔다.
공공(公空)사업으로 번듯한 아파트, 잘 가꿔진 공원, 좁은 골목길에 CCTV가 들어섰지만, 우리 주변엔 위험의 징후가 빈번하다. 아파트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 고독사,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 대낮 대로변의 흉기 난투극. 개발을 위해 개인이 감수해야 할 우연적인 위험은 사회구조화되어, 필연적으로, 언젠가는 현실화되는 사회적 위험으로 진화했다. 압축성장의 그늘 속에 방치된, 잠재된 위태로움은 새로운 형태의 위험으로, 한국 사회가 울리히 벡(Ulrich Beck)이 말한 위험사회와 닮아 있음을 말해준다.
이 구조화된 위험의 그림자는 어떻게 걷어낼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근대적 시스템이, 생활 인프라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은 본질적 가치 상실에 그 원인이 있다. 공공(公共)의 이름으로 공공(公空)을 지향해 왔다면, 이제 진정한 공공(公共)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울리히 벡이 '성찰적 근대화', 시민 참여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듯이 개선된 환경이 공공(公共)을 위한 생활 인프라로 무겁게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선 새로운 설비시설을 넘어 공공(公共)의 가치, '함께'의 가치가 실현되어야 한다.
우연일지 필연일지 모르겠으나 최근 시민주도마을만들기, 시민주도디자인, 사회혁신디자인 등의 움직임이 있다. 시민 공조(共助)에 의한 공공(公共)의 이익을 위해 수행되는 글자 그대로 공공(公共)디자인이다. 산업사회의 불확정된 위험 속에서 옆집 아줌마와 아저씨가 이모와 삼촌이 되는 사회, 우리 지역의 문제에 함께 공감하고 생각하는 '너와 내가 함께하는 연대(連帶)의 시대'이다. 시민이 손을 잡고 함께하는 공공(公共)디자인에 의한 새로운 마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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