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국민이 불쌍하다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지구를 떠나거라" 등의 유행어를 낳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 코미디언 김병조 씨가 설화(舌禍)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1987년 6월 여당인 민주정의당 전당대회 사회를 보면서 "민정당은 국민에게 정을 주는 당, 통일민주당은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당"이라고 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주최 측에서 준 원고를 그대로 읽은 것이었지만 비난의 화살은 김 씨를 향했다. 한학자로 활동하는 김 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일성지화(一星之火)도 능소만경지신(能燒萬頃之薪)이라, 한 점의 불티도 능히 큰 숲을 태운다"고 했다.

국민에게 고통(苦痛)을 주고 싶은 정당이나 정치인이 있을 리 만무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선한 얼굴로 취임사에서 언급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는 모든 국민이 행복한 나라였을 것이다. 코로나 대재앙 속에서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지금까지 국민에게 행복, 고통 중 무엇을 더 많이 줬나란 명제(命題)를 떠올렸다. 국민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행복'을 누리고 있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당하고 있나.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나름 노력하고 있고 일부 성과를 거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들을 보면 고통을 느끼는 국민이 갈수록 늘었고 그 강도가 세졌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로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인이 먼저 고통의 구렁텅이로 굴러떨어졌다. 탈원전으로 직장·미래를 잃어 고통을 당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조국 사태와 검찰 탄압으로 국민 대다수가 평등, 공정, 정의가 시궁창에 처박히는 현실에 고통을 겪었다.

코로나 사태는 국민 고통지수를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신종 플루, 메르스 때도 이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마스크 하나 구하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하고, 경제 활동 마비로 생사기로에 처한 참담한 현실에 국민 고통은 하늘에 닿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인가"란 자괴감에 국민은 더욱 고통스럽다.

국민을 더 극심한 고통으로 밀어 넣는 것은 정권의 뻔뻔함이다. 반성은 하지 않고 우기기·덮어씌우기·자랑하기 일색이다. 국민 고통은 외면한 채 총선 승리와 정권 연장에만 목을 맬 뿐이다. '국민이 불쌍하다'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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