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보수주의가 아니라 현실주의를

이성환 계명대학교 교수(일본학 전공, 국경연구소 소장)

이성환 계명대학교 일본학전공 교수, 국경연구소 소장
이성환 계명대학교 일본학전공 교수, 국경연구소 소장

코로나 사태가 없었다면, 공천만 잘했으면 4·15 총선에서 참패하지 않았을까. 미래통합당 관계자도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한다. 선거 결과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충격이 더 크고, 여진이 계속되는 것 같다. 대구경북은 보수의 심장인가, 지역주의의 상징인가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관건은 미래통합당의 부활 가능성이다. 김세연 국회의원의 말대로 역사적 소명을 다한 것인지도 따져볼 일이다.

미래통합당의 참패와 유사한 예가 일본에도 있었다. 세계에서 집권 기간이 가장 길고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던 자유민주당(자민당)은 2009년 중의원 총선에서 최악의 참패를 했다. 전체 480석 가운데 119석만 얻었다. 총선 전의 300의석이 3분의 1로 준 것이다. 4·15 총선의 미래통합당보다 훨씬 심각했다. 아사히신문은 "당 재건에 대한 전망도 서지 않는다"고 평했다. 자민당의 선거 실무 책임자는 "자민당에는 국가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국민의 심판이라고 했다. 패배 원인은 명확했다. 대안으로 떠오른 민주당에 대한 비난에 집중하면서 자민당이 계속 정권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만 했다. 관성에 안주하는 자민당에 젊은 층이 분노했다.

그런데 2012년 12월 총선에서 자민당은 119석에서 294석으로 3배 가까이 의석을 늘리고 집권당이 되었다.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까.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집권 민주당의 대응 실패에 대한 반사이익도 컸으나, 자민당이 변했기 때문이다. 세 가지로 요약하자. 비난에 몰두하지 않았고, 명확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젊은 층의 지지 회복에 노력했다. 양적완화를 통해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고, 잃어 버린 20년을 탈출하겠다고 했다. 특히 인터넷 등을 통해 젊은이의 눈높이에서 소통을 강화했다. 보수의 이념을 설파하지 않고 그들의 현실 이야기를 들었다. 2009년 선거에서 자민당은 20, 30대 젊은 층에서 민주당에 10% 이상 뒤졌으나, 2012년에는 반대로 16% 이상 앞섰다. 젊은 층이 돌아오고, 이 추세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어땠는가. 반대와 비난만 무성하고 국회를 동물로 만든 것 외에는 기억에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좌파 독재, '폭망', 퍼주기라는 용어가 난무했다. 독재와 폭망(IMF와 탄핵)은 유권자들에게 통합당을 연상케 했을 것이다. 세계적 기준으로 보면 민주당은 좌파가 아닌 중도우파 정도이고, 통합당은 극보수에 속할 것이다. 폭망한 경제를 어떻게 일으켜 세우겠다는 비전은 없고, 맡겨 주면 잘한다고만 했다. 노년층의 지지를 잃을까 유튜브에 매달리고, 젊은이들이 꼰대라고 해도 "나 때는 말이야"로 무시하기 일쑤였다.

보수 대통합에서 통합은 무엇이고 보수는 무엇이었던가. 통합은 정치업자들의 모임이었고, 보수는 자신들도 잘 몰랐다.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라고 치장은 하지만, 내용은 없다. 지금도. 스스로 고민하고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는 내용과 본질이 바뀌지 않는다. 빈번한 비대위가 왜 실패했는가를 살펴야 한다.

보수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한다. 애초부터 정형화된 보수의 이념 같은 건 없는지 모른다. 영국 보수당의 아버지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노동자의 복리 증진을 보수당의 이념으로 삼았고, 부자와 빈자로 나뉜 두 국민을 한 국민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자신들도 모르면서 억지로 보수라는 도그마(dogma)에 갇히지 말고 현실주의로 돌아가라. 시장을 강조하면서, 코로나 사태로 시장이 사라지는 미증유의 사태를 맞고 있는데도, 곳간이나 포퓰리즘 타령만 해야 할까. 그러니 꼰대가 되고 노년층만 바라보는 수구가 된다. 국민들이 편하게 잘사는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제시하고, 시대를 짊어질 젊은 층의 의견을 경청하라. 노년층에 매달려서는 시대정신도 따라가지 못하고 미래도 찾지 못한다. 그래도 40%의 지지가 있다며 미련을 못 버리는데, 대통령제와 소선구제에서는 2%가 승패를 가르는 현실을 봐야 한다. 그리고 세계를 보라. 냉전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한국의 미래에 중대한 변수가 될 동아시아 상황도 많이 변하고 있다. 새 원내대표의 선출이 새 출발이기를 바란다.

이성환 계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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