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시스템 바꿔 제2·제3의 최숙현 사태 막아라

고 최숙현 선수의 극단적 선택으로 체육계의 고질병이 또 도마에 올랐다. 수사에 착수한 대구지검은 최 선수와 관련한 수사 상황을 일부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엄벌을 주문했고, 선수 출신 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유가족을 만나 철저한 원인 규명을 약속했다. 국회는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책임 논란에 휩싸인 대한체육회도 스포츠계 폭력 근절을 위한 결의대회를 갖는다고 한다.

책임 있는 기관들이 너도나도 나서 '엄정 처벌'과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모양새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 속은 타들어간다. 사건만 터지면 호들갑을 떨다 여론이 숙지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이번 최 선수 사태 역시 불과 2년여 전 쇼트트랙 스타 심석희 선수 사건의 데자뷔다. 소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던 심 선수는 2018년 1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선수촌을 뛰쳐나갔다. 체육계에서는 감기 몸살로 둘러댔는데 알고 보니 코치에게 '맞아서'였다. 심 선수는 그해 12월 '체육계 미투'가 터졌을 때 코치를 성폭행으로 고소했고 그제야 대한체육회는 사과문을 내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문 대통령도 당시 "가해자들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리고 쇄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랬더라면 문 대통령이 이번에 "철저한 조사를 통해 합당한 처벌과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문체부에 진상조사를 지시한 것도 판박이다. 온갖 기관들이 나서 대책이라며 내놓던 그 순간에도 최 선수가 여전히 극심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한다. 그럴듯한 말과 사후약방문식 대책으로는 체육계의 폭력, 인권침해를 뿌리 뽑을 수 없다.

최 선수는 경찰과 경주시청, 대한체육회, 국가인권위원회 등 온갖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움을 얻지 못했다. 어떤 사회적 안전장치도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각 기관들이 '피해자'의 입보다 조직의 이익에 주목하는 한 제2, 제3의 최숙현 사태를 막을 수 없다. 체육계 내부의 혁신이 필요하고, 이를 강제할 사회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야말로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최 선수의 절규에 진정 화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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