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일본군의 야전 지휘관은 전투에서 패배하면 대부분 자살했다. 후퇴해 전투력을 보강한 뒤 다시 적과 맞설 여건이 돼도 그렇게 했다. 태평양전쟁 지상전에서 일본군이 처음으로 미군에 패배한 과달카날 전투에 가장 먼저 투입된 이치키 지대(支隊)의 지휘관 이치키 기요나오(一木淸直)가 그런 예다. 그는 이미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한 미군에 두 번이나 이른바 '반자이(萬歲) 돌격'을 감행해 부대를 궤멸로 몬 끝에 부대기를 불태우고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일본군에게는 명예로운 것이지만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경험 많은 장군이 할복할 때 그의 전문 지식은 함께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살육과 문명', 빅터 데이비스) 미국다운 실용주의적 해석이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 다르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살이 무능(無能)을 덮어 버리고 자살이 드리우는 '아우라'만 취하려는 무책임한 이기주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후 일본의 독직(瀆職) 사건 때마다 터져 나온 자살도 '무책임'이란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1976년 록히드 사건 때 뇌물을 실어 날랐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운전기사가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시고 자살했고, 1988년 리쿠르트 사건 때는 다케시다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의 전직 비서가 손목 동맥을 잘라 생을 마감했다. 1999년에는 파산한 일본 장기신용은행의 수석 부은행장이었던 우에하라 다카시(上原降)가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 조사를 앞두고 목을 매 자살했다.
이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자기의 '보스'나 '조직'은 보호했겠지만 진실을 묻어 버림으로써 일본 사회가 더 선진화할 기회를 틀어막았다는 탄식이 쏟아졌다. 이들의 자살은 극히 소아적(小我的) 행위라는 것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살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평소 자임해 온 대로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면 자살하지 말아야 했다. 살아서 진실을 말하고, 피해 여성에게 물적·정신적으로 사죄하고, 공인(公人)으로서 사회 전체에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자살은 '비겁'이란 단어를 피해 갈 수 없다. 플루타크는 '영웅전'에서 이런 잠언(箴言)을 남겼다. "자살은 명예를 빛내기 위해 해야 할 일이지, 해야 할 일을 회피하기 위한 수치스러운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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