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원더우먼, 배트맨, 스파이더맨 중에서 이 시대의 요구에 가장 부합하는 슈퍼 히어로는 누구일까? 바로 스파이더맨이다. 그 어떤 슈퍼 히어로도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으면 외출할 수 없다.
쓰레기 버리러 나오다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되돌아갔다. 마스크를 잊어버려서. 이제는 마스크 없이는 그 누구도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가게 출입도, 대중교통 이용도 안 된다. 눈총은 기본이고 벌금까지 물어야 한다.
소심한 남자가 우연히 주운 마스크를 쓰고는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데 너무 오래 쓰다 보니 마스크가 얼굴에 붙어서 벗겨지지 않고 성격마저 변하는, 짐 캐리 주연의 '마스크'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가 현실이 되어가는 걸까? 마스크는 서서히 제 2의 얼굴이 되어가는 것 같다.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mask'는 가면, 탈, 복면으로 나온다. 마스크의 원래 용도는 '가리기'였다. 수녀의 면사포나 베일, 양반 아낙의 장옷, 이슬람 여인의 부르카, 가면무도회의 가면 등은 감춤으로써 신비감을 자아냈으며, 포토라인 앞에선 죄인들이 눌러쓴 모자와 마스크, 면도나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 쓰는 마스크는 부끄러움을 감추는 유용한 도구이다.
얼굴을 감춤으로써 마스크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끌어낸다. 영화 '반칙왕' 속 소시민 송강호는 울트라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는 없던 용기가 생겨났으며, 탈을 쓴 춤꾼들은 양반 욕도 맘껏 할 수 있었다.
그러던 마스크가 이제는 '숨기기'가 아니라 '지키기'위해 쓰이고 있다. 코로나 대유행 이전에도 우리는 마스크를 써왔다. 페스트가 대유행하던 중세 의사들은 새부리 모양의 마스크를 쓰고 나쁜 공기 (당시는 세균의 존재를 몰랐다)가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 했고, 어릴 적 한겨울에는 찬바람을 막기 위해, 감기에 걸렸을 때는 내 감기를 남에게 옮기지 않으려고 마스크를 썼다. 또한 황사나 미세 먼지가 심한 날에도 자주 마스크를 써왔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큰 저항감 없이 마스크를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던 마스크가 이제는 정치적인 의미까지 가지게 되었다.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 마스크는 저항의 상징이었고 마스크 쓴 자는 탄압 당했다. 코로나 유행 초기 일시적 마스크 부족 사태에서 마스크는 정부를 향한 원망의 빌미였고, 아베노마스크는 아베 정권의 지지율을 끌어내렸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의 미국 대선은 마스크를 옹호하는 세력과 마스크를 무시하는 세력 간 대결의 장이 되다가 급기야 마스크를 비난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마스크는 미국 대선의 초대형 변수가 되어버렸다.
추석 연휴에 가까운 산사를 찾았다. 턱밑까지 숨이 차오르는 고갯길을 오르면서도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스크 때문에 힘들고 답답하지만, 마스크 없는 세상을 앞당기기 위해 오늘도 불편함을 감수하는 우리가 진정 이 시대의 '슈퍼 히어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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