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의 로마 유학생인 성 유스티노 신학교(현 대구가톨릭대의 전신) 전아오(세례명 아우구스티노·1894~1922) 학생의 자필 기도문이 최근 발견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기도문은 전 씨가 1921년 로마 교황청이 운영하는 우르바노대 유학 중 작성한 것으로 최근 이백만 주교황청 한국대사가 우르바노대에서 이 기도문을 찾으며 100년 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이 대학의 모든 신입생은 자필 서약서를 작성했는데 이 기도문은 전 씨가 서약서를 작성하고 두 달 뒤 개인적으로 덧붙인 것이다. 전교생이 의무적으로 쓰는 서약서 외에 모국어로 별도 기도문을 쓴 사례는 이것이 유일하다.
기도문에는 "조선서 처음으로 와서 공부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사 무사히 공부를 잘하여 외교 이방 조선을 로마와 같게 하여 주시고 영원한 당신 영광에 들어가게 하소서"라는 조국에 대한 전 씨의 염원이 담겨져 있다. 본인의 서명과 작성한 날짜(1921년 2월 3일)도 명확히 기록했다.
대구가톨릭대는 1914년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개교해 영남 지역 최초로 대학 교육을 시작했다. 성 유스티노 신학교 첫 번째 입학생인 전 씨는 동급생인 송경정(세례명 안토니오 1900~1923)과 1920년 조선 최초로 로마 유학을 시작했다. 유학 생활 중에 한국인 최초로 교황을 공식 알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전 씨는 로마에서, 송경정은 한국에서 젊은 나이에 사망하면서 사제가 되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전 씨는 로마 유학 중 항상 미소 짓고 쾌활하고 생기와 기쁨이 가득해 동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동료들은 그를 '베이비 전'(Baby Tiyen)이라고 불렀다. 또 철학 논문으로 2등 상을 받을 만큼 학업이 우수했고, 사제직에 대한 열망도 남달랐다. 동료들은 전 씨가 "자기 나라를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회두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현재도 로마 유학을 하는 대구대교구 신부나 대구가톨릭대 학생들은 전 씨의 묘소를 참배하며 조선 최초 유학생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기억하고 있다. 대구가톨릭대는 전 씨의 유학 생활과 이 기도문을 소재로 한 홍보영상을 제작해 보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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