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먹을래? 짜장면. 시골아이에게 짜장면 이상으로 맛있는 외식은 없었다. 그것도 시골에서 십 리 떨어진 장터에 나가야 중화요리 식당이 있었다. 초등학교는 마을에 있어 가까웠으나 중학교는 면 소재지에 있었다. 초등학교는 일제강점기에 지은 단층 목조건물이었는데 중학교는 시멘트로 지은 2층 건물이었다. 중학교 옆 시장통의 OO 반점은 단층이었음에도 중학교 건물 못지않게 눈에 띄었다. 건물들 사이에 떡하고 버티고 앉아 지나는 발걸음을 붙들었다.
아침마다 왕복 버스비만 받아서 오는데 짜장면 사 먹을 여유가 없음은 당연하다. 수업 마치고 우르르 교문을 나오면 문방구의 쫀드기와 아이스께끼, 모락모락 하얀 김이 오르는 찐빵, 분식집의 어묵과 핫도그가 눈을 껌벅거린다. 거미줄 같은 촘촘한 유혹을 배겨내지 못하면 영락없이 십 리 길을 걸어야 한다. 아껴 먹어도 이내 주전부리는 떨어졌다. 산마루에는 저녁놀이 걸렸고, 둥지를 찾아가는 산새 소리와 푸른 바람의 속살거림을 들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도 이심전심이었다. 몇 명이 공모하여 버스비를 아끼기로 했다. 아이스께끼가 아무리 큰 눈으로 껌벅거려도 매몰차게 발길을 돌렸다. 드디어 우리는 성공했다. 미리 정해놓은 토요일, 점심은 OO 반점의 짜장면으로 통일했다. 굵은 면발에 까만 짜장소스가 올려진, 삶은 달걀 반쪽과 오이채가 황홀하게 바라보는 성찬을 마주했다. 아까워서 한참을 바라보다 "먹자!" 구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나무젓가락을 놀렸다. 싹싹 긁어먹은 플라스틱 그릇보다 친구들의 입 주위가 더 소란스러웠음은 말해 무엇하리.
어른이 되고, 음식 만들기에 취미를 붙이게 된 후부터는 짜장면을 즐기지 않았다. 가끔 별식으로 만들어 식탁에 올렸다. 요즘 소원했나 보다. 식구들 입맛을 챙기지 않았는지 작은아이가 오리지널 춘장 두 통을 사 들고 왔다. 춘장 겉면 영양 정보에 '총 내용량 300g, 530Kcal'가 적혀있다. 춘장을 기름에 볶고, 돼지고기와 기타 부식을 넣으면 열량이 엄청나게 올라간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래, 도, 가끔 열량 무시하고 옛날 짜장면을 소환하는 것은 그리운 유년이 있기 때문이다.
춘장은 콩, 밀가루, 소금을 발효시켜 만든 양념의 한 종류이다. 춘장으로 만든 짜장면은 중국식 된장 '첨면장'에서 파생되었느니, 짜장면을 처음 만든 음식점 이름에서 따왔느니 하는 이야기가 돌고 돈다. 1880년대 초반 인천항이 열리자 중국 화교들이 만든 요리가 짜장면이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다. 어쨌거나 짜장면은 중국에서 온 춘장으로 만들기 시작해 이제는 완연한 한국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짜장면' 단어 자체도 맞춤법과 발음의 괴리로 인해 비표준어로 몰렸었다. 다행히 2011년부터 '자장면'과 '짜장면'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서민 외식의 진수는 짜장면이다. 팔보채, 양장피가 아무리 화려하다 해도 수요가 따라주지 않으면 가치에서 밀리게 되어있다. 찬바람이 오소소 몸에 파고든다. 이럴 때는 폐 보호하는 식재료를 사용하여 짜장소스를 만들면 좋다. 맵고, 달고, 따뜻한 성질을 가진 양파를 듬뿍 넣어 짜장 소스를 만든다. 조금 고급스럽게 먹으려면 새우와 오징어를 넣어보자. 청양고추 몇 개 넣어도 별미이다.
Tip: 춘장은 기름에 튀기듯이 볶아둔다. 새우와 오징어는 미리 데쳐둔다. 식용유에 파를 넣어 파기름을 만든 후에 돼지고기, 양파 등을 볶는다. 새우와 오징어를 넣고 춘장을 넣어 버무린다. 물녹말을 부어 농도를 맞춘다. 노정희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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