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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Easy come, easy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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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승 글로브포인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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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 모르는 번호가 뜨는데 받았다. 상대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연락처에 없는 동창은 직접 아는 동창이 아닌 SNS로 알게 된, 빛바랜 졸업사진에서만 확인되는 동기다. 20년 아니 30년에 가까운 시간 서로를 몰랐다가 지금 전화를 통해서 대화를 한다. 서로 어색한 기운이 전화기 너머로 느껴졌다. "어, 나 000이야, 고등학교 동긴데 우리 밴드에 같이 있지." 대화를 시작하면서 "우리말 놓자"고 했다. "어! 그러시게…." 어설픈 대답으로 어색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언제부턴가 친구 중에 명목상 친구들이 많이 늘었다. 페이스북, 카카오톡, 라인, 인스타그램, 밴드 등 수많은 SNS에서 이해를 기반으로 친구 맺기를 하다 보니 아는 사이도 아니고 모르는 사이도 아닌 등록된 '지인'이다. 가입할 때는 이유가 있었지만 그 이유도 시간이 흐르고 관심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방치된다. 대면의 시대에 관계 맺기는 지속적인 서로에 대한 관심과 만남이 있어야 가능했다. 아날로그적 감성을 기반했다면 비대면 시대의 관계 맺기는 등록하고 나면 실제 교류와 소통이 유무와 상관없이 존속한다. 아쉽게도 디지털 세계에서는 양적인 관계가 질적인 관계를 대체한다.

21세기 천재들의 집합체인 소셜미디어에서는 끊임없이 인간의 본성-과시하고 뽐내고 싶어 하는-을 자극하는 알고리즘으로 무방비의 사용자를 '공격'한다. 실생활 속에서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나와 알고 있는 사람의 친구니까 너도 친구 하면 좋을 것 같아라면서 감히 친구를 추천한다. 컴퓨터 모서리에서 살포시 떴다가 사라지는 짧은 순간에 우리는 판단한다. 친구 등록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데 현실에서 느껴야 하는 부담은 배재된다. 소개팅에서 만나는 상대를 수락하거나 거절하는 일에는 감정적,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드는 행위지만 컴퓨터에 마우스 클릭으로 거절이나 수락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손쉬운 일이다.

할리우드 배우의 이름을 본떠서 만든 케빈 베이컨의 법칙이 있다. 자신과 관계가 없는 사람도 6단계만 거치면 지구 상에 누구든 연결된다는 법칙인데 SNS에는 적극 활용하는 사람이 많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의 친구 요청에 기억력과 나이를 탓하게 만드는, 그런데 알고 보니 모르는 사람의 친구 요청이다.

친구,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의 뜻에 부합되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모르는 친구는 점점 늘어나는 현실은 공허한 배부름이다. 혹시 모를 상황에 도움이 될까 하여 맺은 '인터넷' 친구관계는 빛처럼 빠르게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지만 이해관계를 너머 선 '찐' 친구관계는 느리지만 내 곁에 영원히 남는다.

Easy come, easy go.

쉽게 얻은 건 쉽게 잃어버리는 건 인간관계에 가장 잘 들어맞는 속담이다.
양으로 채우는 공허한 배부름보다는 질로 채우는 실제적 포만감이 절실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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