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희수의 술과 인문학] 가슴이 설레는 건 사랑이고, 입맛이 설레는 건 술이다.

칼바도스
칼바도스

미국의 소설가 겸 시인인 잭 케루악은 "취하려 마시지 말고, 인생을 즐기려고 마셔라(Don't drink to get drunk, drink to enjoy life)"라는 말을 남겼다. 한 번뿐인 인생 즐길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성공을 기약하며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우리는 시간에 지배되는 삶 속에서 놓치고 있는 일상의 많은 행복을 잊고 살아간다.

현명한 사람은 인생을 행복하게 즐기는 사람이며,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인생이라는 장기 레이스에서 한 번쯤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를 놓치지 않는다. 독일의 시인 아른트는 "사랑의 고뇌처럼 달콤한 것이 없고 사랑의 슬픔처럼 즐거움은 없으며, 사랑의 괴로움처럼 기쁨은 없다. 사랑에 죽는 것처럼 행복은 없다."라고 했다. 술과 사랑은 많이 닮았다.

사랑과 술의 공통점은 취한다는 것이다. 사랑과 술은 행복을 가지면서도 너무 취하면 그만큼 아프고 힘들다. 사랑도 많이 사랑했던 만큼 헤어진 후 아픔이 오래가고, 술도 많이 마신 만큼 그다음 날 숙취 해소에 힘들다. 사랑에 투자하는 시간도 마음도, 이별 후 겪는 아픔과 회복의 시간도, 우리에겐 소중하고 값진 시간이다. 술을 마실 때 즐거운 것처럼 사랑을 나눌 때 가슴 벅차고 행복하지 않는가.

구름은 바람 없이 못 가고 인생은 사랑 없이 못 산다. 가슴이 설레는 건 사랑이고, 입맛이 설레는 건 술이다. 한순간의 만남으로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리듯 격렬한 사랑에 빠진 애달프고 아름다운 사랑을 달래는 데는 술이 필요하다. 칼바도스(Calvados)는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에 나오는 주인공 라비크와 조앙마두가 마주 앉아, 끝없는 공허와 고독의 분위기 속에서 즐겨 마시던 술이다.

칼바도스 칵테일
칼바도스 칵테일

칼바도스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알코올 도수 40~45도의 애플 브랜디며, 라비크의 영혼과 같은 존재다. 절망과 공포와 허무와 고독에 내팽개쳐진 그를 지탱해주던 친구다. 개선문은 사랑과 우정과 친절이야말로 인간성의 꺼질 수 없는 불길임을 증언하는 작품이다. 술과 친구는 함께 있으면 좋듯이, 사랑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 더 깊고 강렬한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다.

프랑스어로 시드르(Cidre)는 사과 발효주를 말한다. 이것을 증류하면 칼바도스라는 술이 된다. 유럽에서의 사이다는 사과술을 의미하지만, 미국에서는 금주법 당시 사과주 대신 사과 주스를 마셨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사과술을 하드 사이다(hard cider)라고 한다. 큼지막한 사과를 품은 칼바도스도 있다. 애달픈 사랑을 가슴에 품은 듯 칼바도스 중에 병 속에 사과가 들어 있는 흥미로운 술이 있다. 바로 '라 폼 프리 조니 엘(La Pomme Prisonnière)'로 프랑스어로 '갇힌 사과'라는 의미다.

병 속에서 사과를 성장시킨다. 아직 어린 상태의 사과를 병 속에 넣어 줄기를 자르지 않고 병 속에서 머물게 한다. 병이 무거워 성장을 방해하지 않게 살짝 높은 가지에 끈으로 매달아 놓는다. 그리고 9월 수확 시즌이 되면 사과가 들어간 병에 알코올 도수 45%의 칼바도스를 넣고, 사과를 해당 술에 적셔준다. 약 한 달이 지난 후에 병 내에 있는 술을 버리고, 두 번째 칼바도스를 넣어준다.

그리고 또 3~4주 후에 병 속에 남은 술을 버리고 마지막으로 알코올 도수 40%의 칼바도스를 넣어준다. 그 이후에 병을 봉입하고 출하한다. 장인의 정성으로 빚은 술처럼, 사랑하는 연인들이 재잘대는 것은 헌신과 진실된 감정 그리고 신뢰의 징표가 되어야 한다. 술을 더욱 달콤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지만, 사랑을 더 뜨겁게 만드는 것은 술이다. 사랑의 본질은 책임 속에 있고, 술은 지나침이 없을 때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준다.

글 : 이희수 대한칵테일조주협회 회장(대구한의대 글로벌관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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