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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대의 우리나라 고사성어] 소삼반조(燒蔘返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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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삼(燒蔘)'은 인삼을 불로 태우는 것이고, '반조(返照)'는 빛이 되비친다는 뜻이다. '소삼반조'는 임상옥(林尙沃·1779~1855)이 금 같은 인삼을 불태워 중국 상인들을 굴복시킨 일화에서 전해졌다. 상옥은 평북 의주(義州) 출생이고 호는 가포(稼圃)로 어릴 때 사서삼경을 배워 한시도 지었다고 '상인열전'에 전한다. 아버지 임봉핵(林鳳翮)은 청나라와 교류하는 만상(灣商)인데 만상은 의주용만(龍灣) 상인을 말한다. 봉핵이 세상을 떠나자 상옥은 아버지가 진 빚을 갚기 위해 상인의 일을 도우며 틈틈이 청나라 말을 익혔다. 말이 통하자 1786년 장사를 시작하며 혀는 검 같고 입술은 창 같다는 마음으로 인간심리를 탐구했다. 1811년 홍경래 밑에서 일을 봤는데 '물상객주 집 서기로는 그릇이 넘친다'는 이유로 내쳐졌다. 이듬해 1812년 홍경래가 반란을 일으키자 상옥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충정으로 방수장(防守將)이 되어 성을 지키고 공을 세웠다. 이에 오위장과 전라 감사직인 감명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821년 변무사로 이조와 호조판서를 지낸 박종경(朴宗慶)의 수행원으로 함께 연경에 다녀왔다. 이때 조선인들끼리의 경쟁으로 인삼 값이 떨어지자 상도를 세워야 한다며 상옥이 박종경에게 '인삼무역독점권'을 건의했고 받아들여졌다. 이후 의주 만상이나, 송상(松商·개성상인)이나, 경상(京商·한양상인)까지 상옥을 거처야 거래가 됐다. 이후 만상이 청나라 물품을 구입해오면 개성상인이나 한양상인들이 국내에 팔고, 개성과 한양상인들이 국내 각지에서 물품을 구입해 오면 청에 수출하였다.

상옥은 맥이 끊긴 고려홍삼을 만들기 위해 백삼을 여러 번 찐 뒤 건조하여 은은한 자색(紫色)의 홍삼을 만들어냈다. 평소 일은 빈틈없이, 말은 새지 않게 함으로 약효가 뛰어난 홍삼을 팔아 큰 재산을 모았는데, 그때가 42~43세였다. 어느 해 사신단과 함께 많은 홍삼을 가지고 청나라에 갔는데, 청 상인들이 불매동맹(不買同盟)을 벌였다. 담합한 청 상인들이 조선 상인들과 눈치싸움을 하면서 거래가 뚝 끊겼다. 사신들이 돌아갈 때가 되면 싸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버텼다. 이런 중에 상옥은 중국 상인들이 전장에서 돈을 빌려온 것을 알았다. 상옥과 중국 상인들 간에 팽팽한 줄다리기 중에 조선사신단이 돌아왔다. 이제 조선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조선 상인과 중국 상인들이 술렁거렸다. 이때 가포는 여관집 앞마당에 인삼을 잔뜩 쌓아 놓고 불을 질렀다. 불길이 타오르자 중국 상인들이 깜짝 놀라서 달려와 말했다.

"우리가 몽땅 살 테니 제발 태우지 마시오."

사정하자 상옥은 못이긴 척 몇 배 비싼 값을 받고 넘겼다. 상옥은 배짱으로 중국 상인들을 보기 좋게 굴복시켰다. 정확한 정보와 배짱으로 청나라 상인들의 기를 꺾었고, 종래 기라성 같은 상인들을 젖혔으며 '소삼반조'의 역사적인 교훈을 남겨 영원한 금언이 되었다.

상옥의 호 '가포'는 채소밭을 가꾸는 사람을 말한다. 평생 계영배(戒盈杯)를 곁에 두고 넘치는 것을 경계하며 겸손하게 살았다. 1834년에는 사재를 털어 의주 수재민을 구제하였으며,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 같고(財上平如水),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 같다(人中直似衡)는 신념으로 시주(詩酒)로 여생을 보냈다. 76세를 일기로 물은 가두면 썩듯 재물도 그렇다는 생각을 담은 '적중일기'와 '가포집'을 남겼다.

(사)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이사

임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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