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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희의 추억의 요리산책] 말하는 ‘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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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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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나무: 겨우내 몸 움츠리며 지냈어. 칼바람 견디며 우듬지를 보듬었지. 언 땅에 훈기가 돌자 햇살이 몸을 간질이더군. 살짝 실눈을 떠 보았어. 봄이구나. 눈곱을 떼고 기지개를 한껏 켜야지. 나를 탐하는 초식동물이나 사람이 있으니 가시 옷으로 단단히 무장해야 돼. 가만 내 나이가 얼마지, 키가 크면 내 우듬지에 손이 닿지 않으니까 가시 돋우는 걸 중단할까. 얼른 새 살을 키워야겠다. 뚝, 나를 꺾어가는 구나. 억하심정에 가시를 세웠어. 내 몸에 손을 대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화자: 네가 우리 집 마당에 있으므로 안심이 된다. 예부터 너의 험상궂은 가시로 인해 잡귀가 들지 않는다고 하더구나. 잡귀의 도포자락이 네 가시에 걸려서 여간 성가신 게 아니라더군. 그뿐만이 아니야. 네 목질은 연하고 아름다워 슬(瑟)이란 악기를 만드는데 사용한다지.

소리가 약한 것이 단점이나 금(琴)과 음색이 어울리기 때문에 '금슬상화(琴瑟相和)'라는 말이 생겼지. 너로 인해 금슬이 좋아질 거야. "아야." 손등에 선홍빛 물이 흐르네. 여기저기 가시가 박혔어. 너에게 손을 댄다고 화가 났구나. 미안하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너를 맛볼 수 없단다. 네 몸 잘린 자리에 다시 새순 돋을 거야. 그땐 거름을 듬뿍 넣어주마.

엄나무
엄나무

▶엄나무: 나의 본초명은 자추수엽(刺楸樹葉)이야. 맛은 맵고 달며 성질은 평(平)하지. 물갈퀴가 달린 오리발처럼 생긴 커다란 잎이 특징이며, 옛사람들은 오동나무 잎과 비슷한데 가시가 있다는 뜻으로 '자동(刺桐)'이라고 했어. '해동목(海桐木)'이라 부른 것도 오동나무 잎을 비유한 이름이야.

'동의보감', '역어유해', '물명고' 등 옛 문헌에는 '엄나모'라고 기록되어 있고, 경상도에서는 '엉개나무', '멍구나무', '개두릅'이라고도 부르지. 예전에 '음'이라는 부적용 노리개를 아이들이 가지고 놀았어. 그 노리개를 만든 재료가 바로 가시 달린 음나무였지. 가시가 엄(嚴)하게 생겼다고 국어사전에는 '엄나무'라고 표기되었어. 국가식물표준목록에는 '음나무'가 올바른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편하게 '음나무', 또는 '엄나무'로 부르지.
-화자: 싱싱함은 잠시, 이내 시들해버렸네. 가시 세우던 기개도 허물어졌구나. 그러나 음나무, 너는 강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차 없이 공격하더군. 지킨다는 것, 방어한다는 것은 분명 보호해야 할 소중한 무엇이 있기 때문일 거야. 내 손등에 기어이 상처를 내었으니 그 용기가 가상하다. 사람살이 역시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데 무어 그리 대단타고 가시를 세웠을까. 상대가 하는 말에 심기가 불편하면 가시처럼 콕콕 되받아 찌르고 속상하다며 외돌아졌었지. 가시덤불을 안고 스스로 상처 낸 나날들이 많았어. 언제쯤이면 마음 품이 눅눅해질까.

▶엄나무: 사람들은 나를 귀족나물이라고 부르더군. 순이 돋아나는 시기에만 먹을 수 있어서 그렇게 부르나봐. 두릅보다 더 귀히 여긴다니 으쓱해지네. 몸에 좋은 성분이 인삼 못지않게 풍부하다니 먹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식재료일거야.

화자: 음나무 우듬지의 실한 순은 데쳐서 초장에 찍어먹고, 가시나무 사이에 자란 새잎은 데쳐서 된장에 버무리면 봄날 입맛 살리는 데는 그만이야. 고추장장아찌, 간장장아찌로 장만해두면 두고두고 먹을 수도 있어. 이제 내년이 되어야 다시 맛볼 수 있을 거야. 음나무순, 식재료를 나눠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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