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운 날씨를 못 견디는 꽃은 겨울에는 실내로 옮긴다. 그중 하나가 제라늄이다. 한겨울에도 화려한 꽃을 실내에서 볼 수 있어 창가에 두고 즐기곤 한다. 어느 해인가 꽃잎을 정리하다가 제라늄 사이에 비슷한 다른 꽃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 보는 꽃이라 궁금해 흙을 파 보았더니 무꽃이었다. 그러고 보니 가을에 제라늄 사이에 무를 심어 둔 기억이 났다.
과거 늦가을에 김장을 하고 남는 무는 뒷마당에 흙을 파고 심어 두었다. 겨울에 반찬으로도 쓰지만 긴긴 겨울밤 어린 우리들에게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이가 시릴 정도로 찬 아삭한 무를 씹는 것은 또 다른 맛이었다. 그때 기억 때문인지 겨울에도 무를 먹어 보겠다고 제라늄 사이에 심어 둔 것을 잊고 그냥 둔 것이었다.
먹는 무만 생각했지 꽃은 처음 봤다. 먹는 채소인데 굳이 꽃을 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꽃에 귀티가 있고 예뻤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모든 채소는 잎과 뿌리를 먹으니까 꽃은 아예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무꽃 얘기를 했더니 무도 꽃이 피느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그 이후 텃밭에도 변화가 생겼다. 과거 봄에는 정원과 텃밭의 모종은 별개였다. 정원엔 다양한 볼거리 위주의 꽃이었고 텃밭에는 먹을 채소 종류를 심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꽃과 채소의 구분을 굳이 하지 않는다. 점점 텃밭의 비중을 넓히고 채소와 허브를 주로 심는다. 잎이 자라면 가을까지 잎을 따서 샐러드 요리를 하는 데 요긴하게 쓰인다. 시간이 지나면 채소는 꽃이 피고 씨를 맺는다. 과거에는 꽃대가 올라오면 기를 쓰고 꽃대를 꺾었다. 잎을 오랫동안 먹어야 하기 때문에 꽃을 맺고 씨 만드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제는 잎을 뜯어 먹을 만큼 먹고 꽃이 맺히면 그때부터 꽃을 즐긴다. 채소나 허브 꽃이 그렇게 예쁜지 처음 알았다. 배추의 노란 꽃은 허브 못잖게 향도 좋다. 치커리의 파란 꽃은 오래도 갔지만 품위가 있었다. 당근, 상추, 부추, 파, 루꼴라 등 모든 채소의 꽃이 정원용 꽃에 뒤지지 않았다. 각자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따로 정원용 꽃을 키울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우리는 재미를 위해 새로움을 추구한다. 새로운 장소로 여행을 가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특별한 체험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항상 보는 일상을 보는 눈만 바꾸면 즐거움은 새롭게 다가온다. 즐거움은 외부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인식을 바꿈으로써 찾을 수도 있다.
코로나19로 해외 여행을 못 가서 갑갑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이 있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시야를 돌렸다. 1년의 휴가를 매달 며칠씩 쪼개기로 했다. 지난 두 달간 쉴 때는 서울 남산 주위에 머물렀다. 남산은 숲도 좋지만 김구, 안중근, 이시영 등 근대 인물들 동상과 기념관이 있었다. 모두 나라를 걱정하면서 20대에 뜻을 세우고 교육에 힘쓰다가 끝내는 무력 투쟁에 나서는 모습을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나라가 어려우면 이른 나이에 그렇게 일찍 철이 드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잘 지어진 안중근의사기념관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항고하지 말고 죽음을 선택하라던 어머니가 보내준 흰 모시옷을 입은 사진은, 아이 둘을 둔 가장으로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 묘한 감정을 보이고 있었다. 작은 사진으로만 보다가 큰 스크린으로 보는 느낌은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을 주어서 3일 연달아 방문을 했다. 어느 유명한 해외 박물관 관람보다 큰 감동을 받았다. 인식을 바꾸니 새롭게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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