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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무전여행의 특별한 경험

이철우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
이철우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

1972년 2월 중학교 2학년 봄방학 기간 동안 같이 자취를 하던 고등학교 형의 제안으로 3박 4일 일정으로 영주에서 속리산까지 무전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요즈음도 이런 경험이 가능할까 싶은 부정적인 생각이 적지 않지만 당시에도 자전거 무전여행은 거의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보지 못한 모험이었다. 준비물은 딸랑 작은 흑백 카메라와 약간의 비상금 그리고 자전거였다.

첫날은 오후 느지막이 영주를 출발하여 예천을 지나 개포면에 도착했을 때 날이 저물었다. 저녁 요기도 못한 상황이었지만 더 급한 일은 당장 잠을 잘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었다. 비용을 지불하는 잠자리는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이어서 둘러보다가 개포역으로 들어가 역무원 아저씨에게 부탁을 드렸다. 무척 추웠던 겨울이라 춥고 배고프고 그야말로 거지 같았다. 그런데 역무원 아저씨는 어린 친구들이 참 대단하다고 하시며 숙직실로 들어와서 몸부터 좀 녹이라고 권하셨다. 그리고 드시다가 남은 밥을 내어 주셔서 모자라지만 요기를 하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용궁, 점촌, 문경을 지나 오후 두, 세 시가 되어서야 농암면에 도착하였다. 동네 어른들께 화북면으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큰 길로 가면 멀다고 산길로 안내를 하셨다. 어쩔 수 없이 산길을 통해 어두워서야 화북에 도착하였다. 현지 사정을 잘 몰랐던 상황에서 지도를 보고 농암에서 화북이 가깝다고만 판단하고 선택한 길이 산길을 피할 수 없는 힘든 경로였다.

꾀가 조금 생겨서 화북에 도착해서는 곧장 화북중학교 교장 선생님 댁을 찾아갔다. 선생님 내외분께서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시고, 칭찬도 아끼지 않으셨다. 사모님께서는 저녁까지 정성껏 차려 주셨다. 그리고 다음날 문장대를 넘어 법주사를 둘러보았다.

귀갓길도 피곤과 폭설 때문에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눈이 무척 많이 와서 등산로가 다 폐쇄되어 어려움이 겪었고, 당시 체구가 무척 작았던 필자는 눈 덮인 계곡의 위험도 뼈저리게 경험하였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너무 지쳐서 화북에서는 기사 아저씨의 도움으로 버스로 영주로 돌아왔다.

밥을 얻어먹는 일은 형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그리고 필자도 목적 있는 구걸을 경험하였다. 꾸중도 듣고 거절도 당했지만 성취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구걸행위가 처음에는 창피하게 생각되었지만 곧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특별한 경험이 주는 삶의 결실! 특히 어린 시절의 모험이 신념의 긍정적인 힘을 체감하게 하였던 것 같다. 이제는 거의 기억조차 희미해진 추억이지만, 13세 어린 아들에게 이 여행을 허락하셨던 부모님의 관대함이 지금 생각해도 놀랍고, 과정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여러 어른들의 격려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였다. 이 여행은 필자에게 '의미 있는 계획의 실행'에 대한 '용기 있는 자신감'을 갖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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