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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강세황(1713-1791), ‘녹죽(綠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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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연구자

종이에 담채, 29×21㎝,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종이에 담채, 29×21㎝,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보통은 먹그림인 대나무를 녹색물감으로 그린 희귀한 '녹죽'이다. 왜 묵죽이 아닌 녹죽일까? 이 그림을 주문한 김광국(1727-1797)의 요청에 따랐기 때문이라고 강세황이 별지에 밝혀놓았다. 같은 내용의 글이 김광국의 수장품인 '석농화원' 목록에도 실려 있다. 강세황은 왜 반드시 청록(靑綠)을 써달라고 했는지는 모른다고 하면서 다만 작은 화폭에 그려달라고 해서 천 길이나 솟는 대나무의 형세를 맘껏 표현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갑진년 봄에 그렸다고 했으므로 강세황이 이 해 10월 건륭제 천수연(千叟宴)에 참석하며 북경에서 '십지평(十之評)'으로 찬사를 받았던 72세 때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노당익장(老當益壯)의 온아한 기상을 양보하지 않은 필력이다.

김광국은 왜 유별나게 청록으로 그려달라고 했을까? 옛 문인들에게 익숙한 '시경'의 '녹죽의의(綠竹猗猗)', '녹죽청청(綠竹靑靑)'에서 아이디어가 나왔을 것도 같고, 강세황에게 녹화헌(綠畵軒)이라는 당호가 있어서 특별히 녹죽을 부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강세황은 산을 색으로 묘사할 때 청(靑), 벽(碧), 취(翠) 등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산의 색은 녹(綠)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관찰한 바의 소신에 따라 '녹화헌기'(1768년)를 지었다. 그래서 묵죽이 아닌 녹죽을 강세황에게 부탁했을까? 대나무를 잘 그렸던 강세황에게는 노죽(露竹)이라는 호도 있어서 그의 유명한 '자화상'에 이 호가 나온다.

죽세공품으로 유명한 담양의 대표적인 대나무 정원 이름도 죽녹원이다. 죽녹원의 죽죽 솟은 대숲 속을 걸으며 곧고 굳센 죽간, 첩첩이 드리운 상쾌한 죽엽의 녹색 광채를 느껴보면 대나무를 절차탁마하여 자신의 모습을 표리일체로 완성한 군자와 같다고 한 비유에 즉시 수긍하게 된다.

내일은 음력 5월 13일, 이날 대나무를 옮겨 심으면 무성하게 잘 자란다고 하는 죽취일(竹醉日)이다. '죽취일'이라고 종이에 써서 대나무에 붙인 뒤 옮겼다고 한다. 그런데 왜 '대나무가 취한 날'이라고 했을까? 군자인 대나무를 함부로 옮길 수는 없는 일. 군자라도 취하는 날은 누가 떠메고 가도 모른다고 양해를 구하는 뜻일 것 같다.

예부터 정송오죽(正松五竹)이라고 해서 1월에는 소나무를, 5월에는 대나무를 옮겨 심었다. 대나무, 소나무를 각별히 소중하게 여긴 것이다. "녹죽군자절(綠竹君子節) 청송장부심(靑松丈夫心)"이라는 구절도 '추구집'에 나온다. 조선후기 최고의 미술품 수집가 김광국은 당대 최고 묵죽 대가 강세황에게 녹죽을 주문함으로서 자신의 안목을 컬렉션에 더했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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