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함께 행복할 일을 두고 부모, 자녀가 대화 많이 하길"…교육 현장 떠나는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40여년 간 공·사교육 현장서 대입·진로진학 전문가로 활동
교육문화센터 열어 학부모 교육, 지성학원 진학실장도 겸해
학종이 신뢰 얻을 때까진 수능시험과 병행할 수밖에 없을 것
선행학습 맹신 말고 엄마가 자신의 행복과 발전을 추구해야
공교육 가치가 우선, 학원은 공교육의 보조자라는 자세 필요
연구소 열어 교육 관련 무료 상담, 글 쓰기 작업 계속할 생각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겸 지성학원 진학실장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 겸 지성학원 진학실장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지성학원 진학실장)이 40여년 간 몸담았던 교육 현장을 떠난다. 학원 업무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지역 사교육계의 중심에 있던 인물. 학교 교사에서 시작해 학원가에서 대학입시, 진학지도 전문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대구시인협회장을 맡는 등 문인으로서도 꾸준히 활동했다. 최근 그는 일선에서 물러나는 소회를 담담히 밝혔다.

-공교육과 사교육을 넘나들면서 아쉬운 점, 못 다 이룬 일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현실주의자는 상황과 환경 변화에 너무 약삭빠르게 대처해 지탄을 받고, 이상주의자는 자기 고집과 주장이 지나치게 강하고 타협의 여지를 보이지 않아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공·사교육에서 38년 6개월간 일하면서 약삭빠른 현실주의자도, 교육적 이상과 꿈의 실현을 위해 끝까지 싸우는 투사도 못 됐다. 실패한 교사였고, 현실과 이상 사이를 떠도는 낭인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아쉬운 점도 많지만, 후회는 없다. 공교육은 너무 관료적이면서 교사에게 재량권이 없고, 사교육은 사람을 중하게 여기지 않고 이익 추구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어디에서든 기본과 원칙을 지키면서 교육적 이상을 추구하기가 어렵고 힘들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이루지 못한 꿈이 남은 삶을 이끌어 주는 등대가 될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그 방법을 찾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니까.

-오랫동안 교육 현장에 머물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일, 에피소드가 있다면.?

▶학교에 근무할 때 너무 가난해 점심 도시락을 못 사 온 학생이 친구 도시락을 몰래 먹고는 심한 벌을 받은 뒤 자퇴를 결심, 평소 좋아하던 내게 마지막 인사하러 왔다. 새벽 2시까지 8시간을 설득해 자퇴를 막았는데 후에 아주 성공한 사업가가 됐다. 지난해 대구시인협회가 코로나19 작품집을 전국 최초로 발간할 때 이 친구가 소식을 듣고 출판 경비를 후원했다.

선택한 길은 서로 다르지만 비교적 같은 방향을 보며 걷는 훌륭한 동료를 많이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2~30년 전에 학교와 학원에서 배운 제자들이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도 무슨 일이 있으면 내게 자문을 구하고 견해를 묻곤 하는데, 이런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학원가에 나와서는 전국 최초로 교육문화센터를 만들었다. 이후 서울 대형학원들이 내가 만든 문화센터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했다. 예나 지금이나 학부모가 변해야 학생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5년부터 학부모 대상 인문학 강의인 '윤일현의 금요강좌'를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2019년 말까지 280회를 진행했다. 문학, 철학, 역사 등의 인문학 강의를 하며 입시 정보와 전략을 함께 제공했다.

-수능시험, 학생부종합전형 등 대학입시는 늘 논란거리다.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보는지.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은 창의력과 상상력이 생존수단인 시대다. 선다형 문제로는 이런 인재를 선발하기 어렵다. 교과, 수능 성적에 의한 한 줄 세우기를 지양하고 학생의 창의력과 잠재력을 중시하는 선발방식이 학생부종합전형이다.

학종의 문제점은 공정성이다. 투명성과 공정성을 신뢰받지 못하는 정성평가는 수많은 젊은이에게서 도전정신과 꿈을 빼앗아간다. 불공정하고 결과에 승복하기 어려운 제도보다는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공정성 시비가 없는 쪽을 선택하겠다는 것이 다수 국민의 생각이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학생부종합전형은 반드시 정착돼야 한다. 완전한 신뢰를 얻을 때까지는 정성평가(학생부종합전형)와 정량평가(수능시험)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동안 수많은 학생, 학부모를 만나오셨다. 그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우리는 '선행학습'을 맹신하는 듯하다. 공부든 일이든 '빨리, 많이'보다는 '제대로, 정확하게'가 중요하다. 부모님이 자녀의 몸종이 되면 안 된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 엄마가 '자신의 행복과 발전'을 추구할 때 자녀는 엄마를 존경하게 된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일을 두고 대화를 많이 나누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카이사르 사후의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고 자신의 통치 이념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천천히 서둘러라)'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여유를 가지고 과정을 중시하며 즐기는 자녀 양육을 권하고 싶다.

-학원가를 지키는 젊은 강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는?

▶디오게네스는 '거리의 선생님'이었다. 그런데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찾아가 배움을 청했다. 제도권, 비제도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의 자세가 중요하다.

학원 선생님들께 당부하고 싶다. 문제 풀이 요령과 지름길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본기를 잘 다져주는 선생님이 돼야 한다. 항상 학생과 학부모를 존중하고 그들의 고충에 귀 기울여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공교육의 가치를 훼손하거나 공교육을 어렵게 해서는 안된다. 학원은 공교육의 보조자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비영리 '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를 열어 지역 학생과 학부모님께 봉사하려고 한다. 학습 방법과 대입 전략 등 자녀 교육 관련 모든 상담은 무료로 하고 있다. '책 읽기를 통한 학습 동기 유발과 학력 향상'으로 계층이동 사다리를 복원하는 일을 하며 글 쓰는 작업을 계속하려고 한다. 오랫동안 도와주시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약력

-1956년 대구 출생

-영남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포항제철고 교사

-일신·송원·지성학원 진학실장. 총괄이사, 이사장

-현 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대구시인협회 회장

-저서: '낙동강' '꽃처럼 나비처럼' '낙동강이고 세월이고 나입니다'(이상 시집) '불혹의 아이들' '부모의 생각이 바뀌면 자녀의 미래가 달라진다' '시지프스를 위한 변명' '밥상과 책상 사이'(이상 교육평론집) 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