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탄소중립을 위한 제조 역량 강화

김현덕 경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김현덕 경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김현덕 경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탄소중립이 시대의 화두가 됐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든 정치적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든 관계없이 시기와 방법에 대해 다소간 차이가 있을 뿐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대의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협약 및 협정이 발효되는 상황에서 국가별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것은 신뢰의 문제를 넘어서 분쟁을 피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일이 됐다.

탄소중립은 장기간의 실천을 통해 달성할 수 있기에 전문가들은 향후 20~30년간 세계 경제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탄소중립 달성 과정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가와 기업의 미래가 극단적으로 갈릴 것으로 전망되는데, 모든 일이 그렇듯 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사례들도 있다.

일례로 중국은 이미 세계 태양전지 시장에서 80%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고, 풍력발전 분야에서도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어 탄소중립 달성 과정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역설도 있다.

직접적으로 신재생 에너지 산업과 관련이 없지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도 있다. 유럽에서 자동차에 탄소배출 부과금을 물리자 미국의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에 탄소배출권을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 테슬라는 올 1분기에만 탄소배출권을 판매해 약 6천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것은 다른 모든 적자를 메우고도 남을 정도여서 테슬라를 전기자동차 기업이 아니라 탄소배출권을 판매하는 기업으로 봐야 할 지경이다.

탄소중립 달성 과정에서 이러한 역설과 혼란 상황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지속적인 개발을 통해 풍족하게 자원을 소비해 왔던 과거를 생각한다면 앞으로 펼쳐질 탄소중립 달성 과정은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사실이다. 국가별 처지나 산업별 특성에 따라 그 고통의 수위도 달라지겠지만, 제조업이 강한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경제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순수하게 온실가스 배출량만 따지자면 제조업은 온실가스 배출이 큰 산업이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탄소배출량의 26%를 제조업 및 건설업이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조업 비중을 줄이는 것이 탄소중립 달성에 도움이 될까? 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팹시티(fabcity) 운동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 보자.

만들다(fabricate)와 도시(city)의 합성어인 팹시티 운동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오히려 각 도시별 제조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우선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을 가져와 소비하는 과정, 즉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로도 온실가스 배출량의 13%가 수송 분야에서 발생한다. 대구로만 한정하면 그 비율이 40%에 육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 내에서의 자급자족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중요한 수단인 것이다.

다른 이유는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재활용(recycling)과 새활용(upcycling)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도시가 배출한 폐기물량은 2000년에 비해 2배 증가한 하루 600만t에 이르고, 2100년에는 하루 1천200만t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폐기물의 재활용과 새활용이 반드시 필요한데, 제조할 수 있는 역량 없이 재활용과 새활용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팹시티 운동은 2054년까지 도시(지역)에서 필요한 것은 모두 지역 내에서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결국 특정 지역 내에서 제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 즉 지역 내 제조업 기반을 강화하는 것이 탄소중립 달성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이미 국내에서는 탄소중립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논쟁으로 격화되고 있다. 탄소중립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에 의견이 다양한 것은 좋지만, 아쉬운 것은 탄소중립이 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논쟁에 집중되다 보니 탄소중립 달성에 필요한 다른 요소를 놓치고 있지 않은지 걱정된다. 이제부터라도 에너지 전환과 제조 역량 강화가 탄소중립을 위한 양 날개라는 인식의 전환과 함께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과 전략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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