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빠. 천국에서 잘 지내고 있나요? 난 요즘도 가끔 아빠 꿈을 꿔요.
비 오는 날이면 아빠를 천국으로 보내주던 날이 생각나 항상 그리움과 미안함에 잠을 설친답니다. 오늘도 "사랑하는 아빠"라고 쓰고 한참을 아빠 생각에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었네요.
아빠가 가시고 참 많은 일이 있었답니다. 1년을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우고, 물을 마시다가도 주저앉아 울기도 하고, 비 오는 날 회식을 하며 술을 마시고 숙소에 들어가 한참을 울고.. 있을 때 잘하라는 그 노래가사가 참 슬프게 들리더라고요.
처음 아빠가 아주 아프다는 걸 알게 된 때는 제가 강원도 화천에서 군 복무를 할 때였지요.
간부들이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집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을 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어요. 전화를 받으니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아빠가 쓰러져 응급실에 있다고 하더군요. 다음날 바로 내려가니 환자복을 입은 채로 그 먼 길을 어떻게 이리도 빠르게 왔냐며 살짝 웃으며 나에게 말을 하는 모습을 보고 참 힘들게도 눈물을 참았어요.
그 이후로 제가 전역하고 복학해서 술을 한참 마시러 다닐 때, 아빠는 투석하기 시작했죠. 당뇨가 심해서 신장이 거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 기력도 많이 쇠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다 컸다던 아빠 아들은 철없이 술이나 마시고 다녔네요. 뭐가 그리도 노는 것이 좋았는지 점점 안 좋아지는 아빠를 보고도 생각 없이 놀기만 했네요.
졸업하고 인천에 취업해서 올라가 1년 정도 있다가 퇴사를 하고 대구로 내려갔던 날. 반가워하던 아빠의 모습이 기억나요. 고생 많았다며 등을 토닥거려 주던 아빠. 그제야 알 수 있었어요. 나에겐 항상 커 보이고 강해 보이던 아빠가 나이를 드셨구나. 그때부터 아빠랑 바둑과 장기를 두기 시작했죠.
제가 일을 쉬면서 아빠와 사업 관련 얘기도 나누고 같이 일을 하면서 조금씩 기력을 되찾아 가는 모습에 저는 제가 원하던 꿈을 잠깐 내려놓고 아빠가 바라던 일을 해보기로 했죠. 여러 사업을 기획하고 투자를 받기로 확답을 받은 상황에 같이 일을 진행하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면서 아빠가 쓰러지고 건강이 악화되셨죠. 집에서 매일 투석을 하고 인슐린 주사도 맞으면서 잘 버텨주던 아빠, 하지만 치매 증상도 오면서 건강은 점점 안 좋아졌죠.

엄마 생일날, 아빠는 일찍 자고 엄마와 같이 거실에서 TV를 보는데 심폐소생술이 나와서
군대에서 저거 배웠다며 대수롭지 않게 엄마에게 군대 얘기를 했어요. 그다음 날 제가 아빠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죠. 갑자기 의식이 없고 불러도 대답도 없어서 직감적으로 이상함을 느끼고 바로 119에 신고하면서 심폐소생술을 하며 속으로 기도했어요. '하나님! 당신을 그렇게 믿고 헌신하던 우리 아빠 좀 살려주세요!' 구급차를 타고 가면서 엄마에게 최대한 놀라지 않게 전화하고 응급실에 도착해서 의료진분들이 처치하시는 모습을 보며 기도했지만 아빠는 그동안 많이 힘들었는지 그렇게 천국으로 떠났었죠.
아빠가 가고 많은 일이 있었어요. 2년 전에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아주 힘들어 했어요. 이제는 좀 컸다고 아빠 대신 엄마를 위로해줬답니다. 잘했죠? 2달 전에는 엄마가 갑상선 암 수술을 했어요.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히 초기라 전이도 없고 수술 잘 받고 꾸준히 병원 다니면서 잘 회복하고 있어요. 힘들 때마다 많이 보고 싶어요. 아빠.
보고 싶은 우리 아빠.
이제는 아프지도 않고 힘들거나 배신당하는 일 없어서 다행이에요. 거기서 다른 영감님들하고 바둑이랑 장기 두면서 기다리면 언젠가 저도 아빠 보러 가는 날, "그래.. 왔구나"라며 안아주세요. 한 번씩 내려 보면서 엄마 건강하게 잘 좀 지켜주고요.
사랑해요. 아빠.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매일신문이 유명을 달리하신 지역 사회의 가족들을 위한 추모관 [그립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귀중한 사연을 전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하시거나 연락처로 담당 기자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추모관 연재물 페이지 : http://naver.me/5Hvc7n3P
▷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전화: 053-251-1580
댓글 많은 뉴스
홍준표 "김문수 패배, 이준석 탓·내 탓 아냐…국민의힘은 병든 숲"
李 대통령 취임사 "모두의 대통령 되겠다…분열의 정치 끝낼 것"[전문]
李대통령 "모든 국민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 되겠다"
안철수 "이재명, 통합한다더니…재판 중단·대법관 증원법 웬말"
김문수 '위기 정면돌파', 잃었던 보수 청렴 가치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