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 중앙도서관에는 정규 서가 외에 '서고'라는 곳이 존재한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이 공간은 영남대에 부임한 이후 필자에게는 지적 안식처이자,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적 보고였다. '한국계의 이론과 실제'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을 발견한 곳도 일제 식민지 때부터 1960년대까지 금융 관련 자료들이 모여 있는 사회과학 서고의 한 공간이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상부상조적 성격을 가진 민간 자치조직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계이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 시기를 지나며 계는 주로 영리 목적인 이식계(利息契)로 발전하게 된다. 즉, 사회 전반적인 자금 부족으로 공식적 금융기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서민층이 돈을 빌리거나 큰 금액을 저축하는 비공식적인 사금융기관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1960, 70년대, 혹은 더 나아가 198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우리나라 많은 성인에게는 누구에게나 계에 대한 기억이 한 자락씩은 남아있을 것이다.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항상 계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그러한 기억들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대중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했던 우리나라 이식계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는 거의 없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여기서 소개하는 '한국계의 이론과 실제'가 유일하다. 이 책은 저자인 김용락 씨가 산업경제신문사 논설위원으로 재직하던 당시, 해당 신문에 100여 회에 걸쳐 연재한 글을 한국주택금고(한국주택은행 전신, 이후 국민은행과 합병) 조사역이던 1967년 11월에 청자서원에서 출판한 책이다.
이제 산업경제신문사도, 한국주택금고도, 청자서원도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더 아쉬운 점은 김용락 씨에 관해서도 책 표지에 있는 간단한 약력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은 ▷계의 이론 ▷계운영의 실제 ▷계의 법률문제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계의 이론'에서는 우리나라 계의 약사, 현대적 이식계의 현황, 1960년대 계의 보급현황, 당시 계의 성격과 사회적 평가, 계금리가 논의되고 있다. 이런 내용은 우리나라 근·현대 금융사, 사회사, 경제사에 관심있는 연구자들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자료적 가치를 가진다.
필자에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계금리'에 관한 내용이다. 실제로 계를 접해보지 못한 필자에게 계의 운영방식은 항상 호기심의 영역이었다. 순번의 존재 및 이와 관련해 항상 계가 깨질 수 있는 리스크가 존재하는 구조 하에서 어떤 보상과 추가 부담 구조가 있어야 사람들은 계라는 조직에 참여하는가.
이러한 의문을 비로소 해결한 것이 계금리에 관한 내용을 읽은 후이다. 책은 당시 유행하던 번호계, 하와이계, 낙찰계, 정액계, 일수계의 계금리 산출에 대해 논의한 후 추가적으로 무진식, 대장성식 등을 논의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식민지 시기에 이식된 금융 운영 방식이 해방 이후에도 상당기간 우리나라 금융 운영시스템에 스며들어 작동했음을 깨달았다.
이제 계는 극소수 사람만이 참여하고 있는(2019년 현재 전 국민의 0.32%, 한국노동패널자료) 사금융 조직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계가 대중적이던 당시 서민들에게 가졌던 의미를 현재 금융시스템이 보장하고 있는지 반추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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