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동일 칼럼] 누구를 위한 사법권 독립인가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노동일 경희대 교수

학생들과 헌법 정치제도론을 공부하면서 법원 부분을 다루었다.

사법부는 삼권분립의 다른 축인 입법부와 행정부는 물론, 정당·언론·시민단체 등으로부터도 독립해야 한다.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하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의 명시적 규정도 사법권의 독립을 위한 것이다.

교과서는 계속해서 법관의 독립에 대해 '신분상 독립'(인적 독립)과 '직무상 독립'(물적 독립)으로 구분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법관의 신분상 독립은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의 자격·임기·신분을 보장하는 것을 말하며, 직무상 독립은 법관이 재판을 함에 있어서 누구의 지시나 명령에도 구속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법관자격 법정주의, 임기제와 정년제, 계속 중인 재판에 대한 국정감사·조사 금지 등은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라고 한다.

예년에는 여러 가지 사례를 들며 학생들과 활발한 토론을 벌이던 부분이었다. 올해는 조용히 추상적 개념만을 설명하고 넘어갔다. 사법권과 법관의 독립이 우리 사회 시스템 유지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강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우선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건 대법원 판결에 관여한 권순일 전 대법관 문제 때문이다.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이 도지사 사건은 무슨 연유인지 전원합의체로 넘어갔다. 내막을 알 수 없으니, 그저 소부 대법관들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라 생각할 따름이었다. 대법관들의 의견이 5대 5로 갈린 상황에서 최선임인 권순일 대법관이 무죄 편에 섬으로써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절체절명에 처한 이 도지사의 정치 생명을 구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재판 과정은 시간이 지나면 잊힐 일이었다. 하지만 성남 대장동 개발과 이 도지사의 관여 여부가 논란이 되면서 덤으로 권 전 대법관의 이례적 행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퇴직 후 취업이 제한되는 권 전 대법관은 변호사 등록도 없이 화천대유라는 생소한 회사의 고문으로 월 1천500만 원을 받았다.

화천대유는 이 도지사의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자산관리사이다. 화천대유의 실소유자는 법조기자 출신인 김만배 씨라고 한다. 김 씨는 이 도지사 사건 판결 전후 권 대법관 사무실을 8차례 방문한 기록이 있다. 이발소 방문 등 어이없는 변명을 했지만, 권 전 대법관 퇴직 후 김 씨는 한 번도 대법원 이발소를 찾지 않았다. 이 도지사 사건에 관해 대법원 재판연구관들이 유죄 취지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권 전 대법관 등의 요구로 무죄 취지 보고서를 새로 작성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이 대법원 재판 경위에 대한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재판 거래, 사후 뇌물이 운위되는 상황에서 재판 과정을 알고 싶다는 요구는 너무나 당연하다. 국정감사장에서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야당의 집중 공세를 대하는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의 모습은 딱할 정도였다. 재판의 합의 과정은 공개할 수 없다는 법 규정과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말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연구관 보고서를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 논리이다. 김 처장도 대법관으로서 이 도지사 사건에 관여한 바 있다. 모든 대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했노라 당당하게 말하면 된다. 아니 그 이전에 권 전 대법관이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김만배 씨를 만났지만 국민이 재판 거래로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은 전혀 없었다고 말이다.

김태규 전 부장판사의 말처럼 이 문제는 사법부가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다. 아직도 재판 중인 이른바 사법 농단 사건보다 훨씬 더 악성이고 심각한 사안이다. 검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소극적 태도로 유야무야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앞으로 사법권을 공부할 때는 학생들과 함께 토론해 보고 싶다. 이번과 같은 경우에도 법관과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해야 하는지 말이다. 사법부 독립은 어떤 경우에도 침해할 수 없는 신성한 것인지 근본적인 물음을 함께 물어야 한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 보장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면 사법권 독립은 그 자체로 불가침의 명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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