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정신인 DJ라면 같은 곡을 3시간 안에 다시 트는 미친 짓은 하지 않는다. 아까 들었던 곡 또 나오네? 소리 나오고 얼마 안 가 업장 구리다는 소문 끝에 클럽 문 닫는다. 그런 점에서 1983년은 참으로 기묘한 해였다. 같은 곡이 1시간 간격으로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더 이상한 건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한참을 흔들고 들어와 탈진해있다가도 그 곡의 인트로만 들리면 또 틀어? 불평은 커녕 언제 퍼졌었냐는 듯 스테이지로 뛰어나갔다.
"빌리 진 이즈 낫 마이 러버, 딸꾹" 대목에서는 아예 떼창까지 해댔는데 그게 그렇게 필사적으로 따라 부를 대목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클럽만이 아니었다. 그 해 봄부터 이듬 해 봄 사이, 어디를 가도 '빌리 진'이 들렸다. 마치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댄스 플로어가 된 것처럼, 마치 그 노래가 지구라는 행성의 배경음악이라도 된 것처럼.
◆보고 또 봐도 신기했던 그 장면
대중음악사에는 그 장면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가 갈리는 순간들이 있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으로 불리는 비틀즈의 케네디 공항 도착, 포크 페스티벌에 전기 기타 매고 나온 밥 딜런의 등장 같은 게 그렇다. 그러나 딱 한 순간만 찍어 말하라면 단연 1983년 3월 25일이다. 그날은 흑인 음악의 종갓집 모타운의 창립 25주년 파티였다.
자신을 키워준 친정이지만 별로 안 우호적으로 헤어진 마이클 잭슨은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창립자의 설득 끝에 마이클 잭슨은 모타운에서 발매하지도 않은 곡을 부르는 조건으로 무대에 선다(그날 행사 유일한 곡). 마침내 그의 솔로 공연. '빌리 진'의 중간 간주 부분에서 지켜보던 모든 이들은 한 순간 숨을 멈췄다.
분명 다리는 앞으로 움직이는데 몸은 뒤로 미끄러지는 거다. 그리고 몇 차례 빠른 회전 끝에 두 발끝으로 정지해 섰을 때 마치 시간이 영원히 멈춘 듯 했다. 내가 대체 뭘 본 거야. 불과 5초 남짓이지만 음악사는 이 시간을 영원처럼 박제해 기억한다. 노래와 춤이 절정 속에서 완벽하게 하나로 융합되는 순간이었다. 음악을 눈으로도 기억하게 만든 최초의 현대적 팝 스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미국 대중문화 춤의 계보를 하나로 통합한 '빌리 진'
피카소가 그랬다.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고. 문워크라고 알려진 그 동작은 마이클 잭슨 이전에 이미 있었다. 1980년대 이전 티브이 쇼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지만 그때는 춤이 아니었다. 시선을 붙드는 발재간에 불과했던 그 동작에 마이클 잭슨은 숨을 불어넣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빌리 진'의 전체 안무는 미국 대중문화가 수십 년 동안 축적해 온 춤의 역사다.
스윙의 탄력, 소울의 리듬 그리고 스트리트 댄스의 거친 질감까지 그는 시대의 몸짓들을 자신의 리듬 안에 흡수했다. 그리고 문워크라는 결정적인 순간을 정점에 배치하는 것으로 하나의 걸작을 완성한 것이다. 다소 불친절한 피카소의 명제에 마이클 잭슨은 완벽한 주석을 남겼다. "최고의 교육은 거장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훔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잘 훔치는 거다. 관찰 안 하고 그냥 가져다 쓰면 그건 단순 절도다.
◆가사보다 목소리가 더 슬펐던 그 노래
최고의 댄서라는 사실 때문에 그는 손해를 많이 본다. 보컬리스트로서의 천재성이 묻히고 제 대접을 못 받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흑인 남성 가수로 마이클 잭슨을 꼽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경쟁자? 많다. 보컬 톤의 마술사 스티비 원더도 있고 탁성의 제왕 윌슨 피켓도 막강한 후보다. 그러나 한 명을 꼽으라면 결국 마이클 잭슨이다.
시인 이용악을 가리켜 흔히 절창(絶唱)이라고 한다. 단어 뜻이야 알지만 와 닿지 않았는데 뉘앙스를 실감한 게 마이클 잭슨이 부른 '마리아'를 들었을 때다. 절창에 절장(絶腸)의 느낌까지 얹은 그 노래를 불렀을 때 마이클 잭슨은 열 세 살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골백번도 더 떠나보낸 후회와 외로움을 그 나이에 담을 수 있는 가창력을 이후로 나는 만나지 못했다.
마이클 잭슨의 공식 전기 '영화'가 개봉했다. 이런 저런 그러나 나름 논리적인 이유로 나는 영화를 보지 않을 생각이다. 가무 빼고 그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빌리 진'의 뮤직비디오 촬영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어딘가를 바라보다 씩 웃는 모습이었는데 그게 노래나 춤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착하게 웃는 사람은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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