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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도 문학도 아닌] 두 바나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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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희 변호사
김계희 변호사

오래전부터 실업 상태인 한 부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과일 좌판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아들은 다양한 과일 가운데 값이 비교적 싼 바나나를 발견하고는 부모에게 바나나 한 개만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딱 한 개면 된다고 했다. 가난한 부모는 수중에 있는 돈을 다 털어봤지만, 그것으로는 바나나 한 개도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강제로 아이의 손을 잡아끌며 과일 좌판 앞을 지나쳐야 했다. 아이는 목을 놓아 울었다.

아이는 아주 오랫동안 바나나 맛을 보지 못했다. 바나나가 어떤 맛이었는지 거의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크게 상심한 아이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아이가 계속 울음을 그치지 않자 짜증이 난 아버지가 아이를 한 대 때렸다. 아이가 그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고집스럽게 울어대자 엄마가 달려와 아이 아빠를 나무랐고, 부부 사이에는 말다툼이 벌어졌다.

말다툼은 격렬해졌고 '바나나'를 외치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커져만 갔다. 아이 아빠는 문득 사는 것이 슬퍼졌다. 슬픔은 곧 원망으로 변했고 그는 자신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무능을 원망하고 직업도 없고 수입도 없어 바나나 하나 사달라고 조르는 아들의 작은 소원조차 만족시키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원망했다.

이 원망은 결국 그를 아파트 난간으로 몰고 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던지게 했다. 어린 아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여전히 바나나를 찾으며 울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 엄마는 그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끝내 목을 매고 말았다.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 나오는 '바나나' 이야기다.

2024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약 87억 원으로 판매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2024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약 87억 원으로 판매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코미디언'

30대 홍콩 암호화폐 사업가 저스틴 선이 은색의 덕트 테이프로 벽에 붙여진 바나나를 떼어내 먹는다. 2024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약 87억 원으로 판매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코미디언>이다. 낙찰자는 바나나와 접착테이프 롤 각각 한 개, 바나나가 썩을 때마다 이를 교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설치 안내서, 진품 인증서를 받게 된다고 한다.

저스틴 선은 "이것은 단순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 예술, 밈, 가상화폐 커뮤니티의 세계를 연결하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라며 "이 작품은 미래에 더 많은 생각과 토론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이 또한 역사의 일부가 될 것이라 믿는다."라고 했다.

영국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요즘 사람들은 모든 것의 가격은 알지만, 어떤 것의 가치도 모른다."라고 했다. 그가 말한 '요즘'은 19세기 말이었지만, 요즘 사람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소풍을 가거나 입원했을 때나 겨우 맛볼 수 있었던 그의 바나나 한 개와 언제고 한 송이에서 뚝 떼어먹던 그녀의 바나나 한 개의 가격은 같지만, 그 가치는 같을 수 없다. 그는 현재 대기업 임원으로 남부러울 것 없지만 그 바나나 한 개의 가치 체계는 여전히 그의 내부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는 버리는 양이 더 많아 보이는 음식들도 불편하고, 그게 그거 같은 쌓이는 옷이며 가방도 불편하다.

그가 뭐라도 이에 대한 불평을 얘기할라치면 그녀는 대뜸 '당신은 취향이 너무 후져', '인제 그만 컨츄리스타일에서 벗어날 때도 되었지 않아'라고 핀잔을 준다. 불편함은 먼지처럼 소리 없이 쌓이지만, 평소에는 그 정도에서 그렇게 넘어간다. 그러다 어느 날 노모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여동생에게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동생은 그녀가 알아차리기 전에 금방 갚을 거라고 말한다.

그는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것을 알지만 노모와 여동생을 외면할 수 없다. 그는 몰래 돈을 융통해준다. 결국, 그가 우려하던 사태는 벌어지고야 만다. 돈의 액수가 적지는 않다. 그도 모르지 않는다. 그녀는 신뢰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는 생각한다. 그녀가 사들인 쓸데없는(?) 물건들의 가격에 비하면 많지 않은 액수이다. 그의 불편함은 폭발하고, 그녀의 사치와 낭비에 대한 맹폭이 시작된다.

바나나 한 개는 이렇게 그와 그녀의 이혼 법정에 있다.당신의 바나나 한 개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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