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드디어 베일 벗은 영화 '듄(Dune)'

영화 '듄'의 한 장면
영화 '듄'의 한 장면

드디어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이 베일을 벗었다.

'듄'은 1984년 데이비드 린치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된 프랭크 허버트의 SF 서사 소설이다. 그러나 당시 조악한 제작 환경에서 영상으로 옮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나 다를까 데이비드 린치의 '듄'은 노력만 가상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무참히 실패했다.

37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지난 20일 관객에게 첫 선을 보였다. 그것도 매혹적인 서사와 독특한 비주얼, 비장감을 더하는 웅장한 스케일을 고스란히 품은 놀라운 결과물로 말이다.

'듄'의 시대적 배경은 서기 10,191년이다. 황제가 지배하는 행성 제후시대다. 사막으로 이뤄진 아라키스는 모든 가문이 탐을 내는 행성이다. 이곳에서만 채취할 수 있는 스파이스 때문이다. 우주비행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다. 황제는 아라키스 행성을 아트레이데스 가문에게 맡기지만, 결국 정적인 하코넨 가문의 침략을 부추기면서 선과 악의 대격돌을 불러온다.

영화 '듄'의 한 장면
영화 '듄'의 한 장면

영화는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 폴(티모시 샬라메)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폴은 끊임없이 예지몽을 꾼다. 미래 대혼돈의 시대가 오고, 행성간의 대전쟁이 벌어질 때 이에 맞서는 자신을 보는 것이다.

'듄'의 설정은 다분히 제국의 침략기인 20세기를 연상시킨다. 아라키스 행성의 고통 또한 마찬가지다. 이 광물만 아니었으면 침략당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스파이스는 20세기의 석유와 같은 것이다. 1만 년이 넘는 미래를 그리고 있지만, 지극히 중세의 권력 투쟁과 정치적 담론을 담고 있다. 종교적인 색채 또한 마찬가지. 오래된 메시아의 갈증이 배경에 깔려 있다.

'듄'이 각광받는 것은 허무맹랑한 공상과학이 아닌, 이러한 현실을 바탕을 둔 세계관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작가가 탐을 냈다. 칠레의 거장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는 러닝타임 16시간의 대작을 기획했고, 리들리 스콧 감독도 욕심을 냈다. '스타워즈'는 물론이고, '매트릭스'와 드라마 '왕좌의 게임',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등 여러 작품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영화 '듄'의 한 장면
영화 '듄'의 한 장면

그럼에도 드니 빌뇌브의 '듄'은 기시감이 없는 놀라운 비주얼을 선사한다. 이미 우주인과의 조우를 그린 '컨택트'(2016)에서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외계인의 문자와 세로로 선 우주선의 독특한 비주얼로 관객을 놀라게 한 그였다.

'듄'에서는 더욱 정교하고 세밀한 묘사로 관객을 사막행성으로 초대한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사구(모래언덕)를 비롯해 거대한 우주선의 압도적인 위용, 거대한 폭발, 먼지바람 가득한 황색 화면의 미장센, 의상과 소품 등 모든 것이 색다른 느낌과 신선한 맛을 선사한다.

'스타워즈'나 '스타트랙'과 같은 세련된 스타일의 영화를 찾는 관객에게는 낯선 SF가 될 수도 있다. '듄'에는 우주선이 빔을 쏘면서 전투를 벌이는 전형적인 우주 장면은 없다. 날개 달린 매끈한 형태의 우주선도 없다. 거대한 사각형 구조물과 같은 우주선이거나 서서히 다가오는 원통형 우주선들뿐이다. 광선총보다 칼로 싸우니 전통적인 SF영화와는 틀 자체가 다르다.

영화 '듄'의 한 장면
영화 '듄'의 한 장면

이런 묘사는 원작자인 프랭크 허버트의 세계관 때문이다. 그는 미래세계가 기술은 발전했지만, 이를 운용하는 것은 인공지능이나 컴퓨터가 아니라고 설정했다. 어느 시기에 인간이 인공지능을 절멸시키고, 스파이스를 통해 비범해진 능력으로 우주비행 같은 고도의 계산도 무리없이 해결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듄'의 미래는 원시성과 첨단 기술이 공존하는 독특한 모습이 된다. 아라키스 행성의 원주민은 난민처럼 우중충하고, 의복도 고대 원시족 모습 그대로다. 행성을 점령한 권력 가문의 주택 또한 동굴 속 돌집과 같은 형태이다. 비행정도 잠자리의 날갯짓이 필요하고, 사막에는 거대한 벌레가 기어 다닌다. 말하자면 디스토피아의 어두운 기운이 살아 있는 드라마틱한 미래가 되는 것이다.

'듄'은 비주얼과 음악의 절묘한 결합을 보여준다. 돌비 애트모스 음향시설로 감상한 '듄'은 둔탁한 타격음과 그 속을 녹아드는 몽환적인 음악으로 관객의 가슴을 때렸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영적인 힘이 가득하다. 역시 한스 짐머(음악감독)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영화 '듄'의 한 장면
영화 '듄'의 한 장면

캐릭터를 떠받치는 배우진 또한 스크린을 압도한다. 폴의 어머니 제시카 역의 레베카 퍼거슨, 폴의 아버지인 레토 공작의 오스카 아이삭에 하비에르 바르뎀, 스텔란 스카스가드 등 명배우에 터프한 액션스타 조슈 브롤린, 데이브 바티스타, '아쿠아맨' 제이슨 모모아까지 가세했다. 무엇보다 연약한 몸매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티모시 샬라메의 존재감이 영화를 살리고 있다.

'듄'은 1965년부터 20년간에 걸쳐 6권으로 펴낸 방대한 분량의 소설이다. 드니 빌뇌브는 그것을 한 영화에 담으려 했던 데이비드 린치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다. 연약한 모습의 폴이 예지몽을 통해 각성하고, 메시아로서의 행보를 딛게 되는 순간까지만 담았다. 그리고는 제목에 '파트 1'이라고 달았다. '듄'의 전반부인 셈이다. 속편이 기대되는 영화를 본 것은 참 오랜만의 일이다. 155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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