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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습니다] 박상현 씨 모친 故 우정숙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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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둘 꽃다운 나이에 청상이 되어 네 자녀 키우며 고생만 하셨습니다
새벽에 열무를 뽑아 머리에 이고 이십리 산길 걸어 장에 내다 파셨지요

생전 어머니 우정숙(앞줄 오른쪽) 씨 모습. 가족제공.
생전 어머니 우정숙(앞줄 오른쪽) 씨 모습. 가족제공.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사랑하는 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2021 신축년 2월 26일 오전 10시 30분 사랑하는 내 어머니 우정숙 여사께서 94세의 일기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홀연(忽然)히 떠나셨다. ​가엽고도 불쌍한 내 어머니는 자식 손자들을 다 남겨두고 한 많고 고단했던 세상을 하직하고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중증 치매로 요양원에 모신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음력으로는 1월 15일 정월 대보름 명절날 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뵈었을 때는 많이 야위어 건강하셨던 옛 모습은 아니었지만, 표정만큼은 평온한 얼굴이었다.

이마를 짚어보니 살아계신 것처럼 온기가 있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남들이야 천수(天壽)를 다 누리고 떠나셨는데 무슨 여한이 있겠느냐고 말들 하지만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의 일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백일이 되는 날. 어머니 골분(骨粉)이 묻혀있는 석산 선친 산소에 올라와 보니 어머니가 묻힌 자리에는 벌써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어머니를 묻은 곳이 이제는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 어찌 인생이 무상(無祥)타 하지 않겠는가?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면 어린 나이에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모진 가난으로 못 먹고 못 배우고 고단하게 살아온 칠십 평생이지만, 서른둘 꽃다운 나이에 청상이 되어 남편 없이 4남매를 키우시며 힘들었을 어머니의 그 한 많은 인생에 비할까?

1988년에 열린어머니 우정숙 씨의 회갑연 기념사진. 가족제공.
1988년에 열린어머니 우정숙 씨의 회갑연 기념사진. 가족제공.

내 나이 겨우 아홉 살, 막냇동생이 갓 돌이 지났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만 하셨다. 어린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했기에 남편을 잃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이때부터 어머니의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삶이 아니었다. 그냥 살기 위한 몸부림이고 전쟁이었다.

스무 마지기가 넘는 전답에 혼자 농사를 짓느라 어머니의 저고리는 항상 땀에 찌들어 있었고, 여름이면 새벽 3시에 일어나 콩밭 이랑에 심어놓은 열무를 뽑아 머리에 이고 이십리 산길을 걸어서 원동오일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셨다.

어머니의 옷은 항상 땀에 젖어 마를 날이 없었는데 그때는 어머니가 왜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리는지를 몰랐다. 철없고 바보 같은 자식들은 어머니는 원래 땀이 많은 체질인가 보다 하고 무심히 생각했었다.

불쌍한 어머니는 그렇게 전쟁 같은 일평생을 살아오셨다. 만년에는 설상가상으로 할머니마저 중풍으로 쓰러져 3년 동안 홀로 대소변을 받아내는 고역을 치르시고 십여 년 전에는 큰아들마저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고통을 겪으셨다.

이 얼마나 기구한 인생인가? 어머니 상중(喪中)에는 별로 나지 않던 눈물이 지금은 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는 걸까? 밥 먹다가도 눈물이 나고, 어머니가 기거하시던 방문을 열어볼 때도 눈물이 나고, 지인들이 위로하는 말 한마디에도 눈물이 나고, TV 볼 때도 눈물이 나고... 천하에 불초(不肖)한 놈이 어머니 살아생전에 무슨 효자 노릇을 했다고 이렇게 눈물이 날까?

주자십회훈(朱子十悔訓)에 부모에게 불효하면 돌아가신 후에 뉘우친다는 말이 있다. 살아생전엔 왜 깨닫지 못했을까? 누구나 알고 있는 만고(萬古)의 진리를... 어머니 너무나 그립습니다. 어머니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에 대해 무심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귀찮아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원망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혹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제 자식으로 태어나십시오. 그때는 금이야 옥이야 마음껏 아끼고 사랑해 드릴게요. 혹시 내세(來世)가 있다면 아버지를 다시 만나 백년해로하며 원도 한도 없이 행복하게 한번 살아 보세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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