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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윤두서(1668-1715), ‘심득경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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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연구자

비단에 채색, 160.3×77.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비단에 채색, 160.3×77.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윤두서가 아낀 재종(再從) 동생 심득경(1673-1710)은 38세에 요절했다. 진사시에 나란히 합격했으나 정쟁이 심했을 때라 둘 다 대과를 포기하고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벼슬이 없다는 것은 조선 사대부들이 지식인의 사명으로 여겼던 왕을 보좌해 백성을 이롭게 한다는 '치군택민'(致君澤民)을 실현할 방도가 없다는 뜻이다. '공부해서 뭣하나'라는 자괴감을 떨칠 수 없었을 것이다. 뜻을 펴지 못한 동병상련의 처지였던 심득경의 이른 죽음을 애통해하며 그의 가족에게 제사 때 걸으라고 윤두서가 그려 준 그림이 '심득경 초상'이다.

'자화상' 외에는 당대 인물을 그린 윤두서의 유일한 초상화이고 남아있는 그의 그림 중 가장 크다. '심득경 초상'으로 확인되는 화기(畵技)의 치밀함은 여가의 취미생활을 넘어선다. 윤두서는 조선 지식층의 그림에 대한 태도가 진지한 전문성으로 전환하는 첫 머리에 있다. '심득경 초상'은 새로운 유형의 문인화가가 출현했음을 알려주는 정식 초상화라는 점, 18세기 초 한 재야 지식인의 평상복 차림 인물화라는 점에서도 각별하다.

'심득경 초상'은 동파관을 쓰고 도포를 입은 심득경이 등받이가 없는 사각 의자에 두 손을 모으고 단정하게 앉아있는 전신의좌상(全身椅坐像)이다. 얼굴은 왼쪽이 80% 정도 보이는 좌안팔분면(左顔八分面)이다. 맑은 얼굴색과 짙은 수염, 붉은 입술을 비롯해 도포의 옅은 청회색, 하늘색 도포 끈, 연두색 신발, 흰 옷깃과 버선 등의 색채는 심득경의 모습에 사실감과 침착한 생동감을 더한다. 명암을 넣은 가는 선묘의 옷 주름이 자연스러운 것을 보면 이런 옷을 입힌 비슷한 몸집의 모델을 앉혀 놓고 그렸을 듯하다. 얼굴과 이목구비는 연한 갈색 선으로 윤곽을 그렸고 오목한 부분에 은은하게 음영을 주었다. 콧수염과 턱수염은 한 가닥 한 가닥 세심하게 그렸고 속눈썹과 귀에 난 잔털도 한 올 한 올 정성스럽다.

제일 위에 예서로 크게 쓴 '정재처사(定齋處士) 심공(沈公) 진(眞)' 표제가 있고, 얼굴 옆쪽으로 좌우 두 부분에 옥동 이서(1662-1723)가 지은 찬문 2편이 있다. 오른쪽 아래는 윤두서의 낙관이다.

유(維) 왕삼십육년(王三十六年) 경인(庚寅) 십일월사(十一月寫) 시(時) 공(公) 몰후(歿後) 제사월야(第四月也) 해남윤두서(海南尹斗緖) 근재심사(謹齋心寫)

왕 36년인 경인년(1710년) 11월에 쓰다. 때는 공이 죽은 후 4개월째이다. 해남 윤두서가 삼가 재계하고 심사(心寫)하다.

숙종 36년 11월 심득경이 작고한 4개월 만에 이 그림을 완성했음을 밝혀놓았다. 조선 후기 미술비평가 남태응(1687-1740)은 이 그림이 심득경의 집으로 오자, 온 집안 사람들이 놀라 울면서 마치 심득경이 되살아난 것 같다고 했다는 말을 '청죽화사'(聽竹畵史)에 기록해 놓았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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