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구문화와 김유신
중국 제남시에는 산동성박물관이 있다. 필자는 이 박물관에 신석기 대문구인(大汶口人)들이 사용하던 제기가 전시되어 있는 것에 눈길이 갔다. 대문구인이란 서기전 4천300경부터 서기전 2천600경까지 주로 황하 하류 일대의 산동반도와 하남성, 강소성 일대에 널리 거주했던 신석기인들을 뜻하는데, 이들이 만든 문화를 대문구문화라고 부른다. 중국학계 일각에서 이 문화의 주인공을 소호금천(少昊金天)씨로 보기 때문에 우리와 깊은 관계가 있다. 1920~40년대 중국의 인문사회학계를 이끌었던 고사변(古史辨)학파의 양관(楊寬)은 소호(少昊), 은나라 시조 설(契), 예(羿)가 모두 동이인(東夷人)이라고 보았는데, 동이(東夷)란 중국인들이 우리 민족을 뜻하는 용어이다. 게다가 소호금천씨는 가야 및 신라 사람들의 선조이기도 하다.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는 김유신을 소호의 후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신라 사람들은 스스로 이르기를,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후예여서 성(姓)을 김(金)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김)유신비에서도 또한 "헌원(軒轅)의 후예요 소호(少昊)의 자손이다"라고 하였으니, 곧 남가야 시조(始祖)인 수로와 신라는 같은 성이었다.(삼국사기 '김유신열전')
김유신의 조상이라는 소호금천씨의 선조(先祖)라고 할 수 있는 대문구인들이 만든 문화는 지금 사람들이 보기에도 놀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이들이 만든 도자기는 세 발 달린 흑도(黑陶)와 백도 도자기(규·鬹)인데, 이중 흑도 고병배(高甁杯)는 그 두께까 계란 껍질만큼이나 얇아서 5~6천년 전에 어떻게 저런 도자기를 만들 수 있었을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계란 껍질은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지지만, 이 도자기들은 몇 천 년 동안 온전히 보존된 채 발굴되었다. 현재의 도자기 장인들도 고병배처럼 얇은 도자기를 만들기 힘들다는 사실이 대문구인들의 신기에 가까운 도자기 제작 기술을 잘 말해준다. 대문구인들이 만든 흑도제작 기술이 용산문화(龍山文化·서기전 2천500~서기전 2천000)의 흑도문화로 이어지는데, 현재 중국에서 세계 4대문명의 하나로 자랑하는 용산문화는 동이족 대문구문화를 계승한 동이족문화이다. 중국의 고대 신석기문화를 답사하면 우리의 선조들인 동이족 유적, 유물은 널려 있지만 정작 한족(漢族)의 유적, 유물은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국가차원에서 역사만들기에 나서고 있는 중국의 고민이 절로 느껴진다.
◆대문구인들이 새를 숭상한 이유
대문구인들은 의술도 발전했다. 1995년에 발굴된 인골에서 인위적으로 뇌를 수술한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중국 학계는 이 인골을 의학적·과학적 수단을 총동원해 조사한 결과 인공으로 뇌수술한 유물이라고 발표했다. 5~6천년 전의 신석기인들이 뇌수술을 했다니 믿기 힘들 것이지만 유물이 증거하고 있으니 부인하기도 힘들다.
대문구문화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는 하늘에 제사지낸 유적들이다. 이들이 만든 제기(祭器) 중에 삼족(三足)이면서 새 형상을 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릇의 받침대도 새의 부리 모양으로 만들었다. 새의 부리 모양 제기들의 입구는 모두 하늘을 향하고 있다. 하늘을 향한 제기의 모습은 간절한 기원을 담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조상들이 있는 하늘로 날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제기에 실린 것은 아닐까. 그러한 염원이 새숭배 사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소호 금천씨가 새를 얼마나 숭배했는지는 관직명까지도 새의 이름으로 정한데서 알 수 있다. 새의 특성을 이용해 각 행정부처의 이름을 지었다. 건설을 맡은 관직에는 뻐꾸기를, 교육을 맡은 관직에는 집비둘기를, 법률과 형벌을 맡은 관직에는 매를, 병권을 맡은 관직에는 독수리를, 그리고 대변인 역할의 관직에는 종달새를 대응시켰다. 하루 종일 지저귀는 종달새를 대변인 역할에 대응시킨 것은 재미있다.
춘·하·추·동을 관장하는 관직도 새의 명칭으로 정했다. 봄은 제비, 여름은 까치, 가을은 종달새였다. 겨울은 담당하는 금계는 머리는 닭 볏 모양이고 꿩의 깃털을 지녔다. 이 모든 관직을 총괄한 존재는 현재 한국 대통령실의 상징이기도 한 봉황이었다.
◆난생신화의 탄생
새숭배사상은 난생신화로 이어진다. 우민국, 난민국 사람들은 모두 알에서 나왔다고 했다. 알에서 나왔다는 난생신화가 탄생한 것이다. 난생신화는 알에서 태어난 인물이 종족의 시조가 되거나 나라를 세운다는 내용이다. 중국 신화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원가(袁珂)는 물론 역사학자 장광직(張光直) 등은 난생신화를 동이족의 신화라고 말하고 있다. 난생신화는 동이족 문화의 대표특징 중 하나이다.
공자가 크게 높인 왕조가 하·은·주(夏殷周)의 삼대(三代)인데 그중 상(商)이라고도 불리는 은(殷)은 난생신화다. 사마천은 《사기》 〈은본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은(殷)나라 시조 설(契)의 어머니는 간적(簡狄)이다. 간적은 유융씨(有娀氏)의 딸로 제곡(帝嚳)의 두 번째 비(妃)가 되었다. 세 사람이 목욕하러 갔을 때 현조(玄鳥)가 그 알을 떨어뜨린 것을 보고 간적이 이를 삼키고 임신해 설을 낳았다.(《사기》 〈은본기〉)
진시황의 진나라 역시 난생사화다. 진(秦)나라 시조 대업(大業)은 대업은 전욱의 후손인 여수(女脩)가 베를 짜던 중 현조가 떨어트린 알을 먹고 낳은 인물이다. 은나라나 진나라 모두 동이족 국가라는 뜻이다.
서국(徐國)도 마찬가지다. 서국은 중원의 정통왕조라는 주나라와 치열하게 전쟁을 치렀는데, 주 목왕이 서쪽으로 순행을 하던 중, 서국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천리 길을 하루 만에 달려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서국의 군주였던 서언왕(徐偃王) 신화는 고구려 주몽신화와 닮아 있다. 서언왕과 주몽은 모두 어머니가 햇빛을 받아 잉태해서 알에서 태어났다. 둘은 모두 버림을 받는데, 이는 영웅이 겪는 고난을 상징한다. 이런 난생신화는 베트남의 문랑국의 건국 이야기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니 동이족 건국신화는 한국과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까지 널리 퍼져있는 것이다.
◆가야의 김수로왕과 신라의 혁거세왕
가야의 김수로왕과 신라의 혁거세왕은 하늘에서 내려온 알을 깨고 태어난다. 모두 하늘과 직결된 탄생신화를 지니고 있다. 난생신화는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사상(天孫思想)인데, 이런 천손사상의 정수가 바로 단군신화이다. 신화학자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각국의 신화는 그 민족의 특징을 나타내는데, 동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는 난생신화는 모두 동이족의 신화이다.
문헌상으로는 '사기 - 은본기'의 시조 설에 대한 기록이 최초의 난생신화지만 동이족의 중심지 중의 하나였던 하남성(河南省) 정주(鄭州)시의 대하촌유지(大河村遺址) 박물관에는 서기전 2천700~2천200년 때의 '새 알(鳥蛋)' 유물이 있다. 은나라(서기전 1천600~서기전 1천46) 이전부터 난생신화는 널리 퍼져 있었다는 뜻이다.
대문구문화의 중기(기원전 3천500~3천년경)는 홍산문화의 후기에 해당한다. 홍산문화(기원전 4천500~3천)는 고조선 선조들의 문화인데, 여신묘가 유명하다. 여신묘에서는 단군신화를 연상케 하는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중앙의 여신 좌우에 새와 곰의 형상이 놓여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새 부조와 곰 발바닥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하늘을 상징하는 새 부조가 출토되었다는 것은 천손사상이 홍산문화 속에 깃들어져 있음을 말해준다. 대문구문화와 홍산문화 모두 새와 관련된 문화라는 사실은 두 문화가 모두 동이족의 정체성을 지닌 우리 선조들의 문화임을 말해주는 증거들이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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