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햇볕의 힘을 기억하렴

호프가 여기에 있었다/ 조앤 바우어 지음/ 도토리숲 펴냄/ 2020년

바다 위로 석양이 비춘다. 정순희 제공
바다 위로 석양이 비춘다. 정순희 제공

바람이 차갑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마음까지도 서늘하게 만드는 요즘, 힘과 위로가 될 만한 따스한 언어에 눈길이 머문다. 바로 '호프가 여기에 있었다'이다.

뉴베리상과 크리스토퍼상을 받은 이 작품은 우울한 현실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힘을 독자들에게 나눠준다. 작가 조앤 바우어도 어두운 청소년기를 꿋꿋하게 이겨내었기에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다. '열두 살 192센티', '열일곱 제나' 등과 함께 이 책은 많은 청소년에게 사랑받고 있다.

엄마가 원치 않는 아기였던 주인공은 미숙아로 태어나 이모에게 맡겨지고 엄마는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자신을 찾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꿈은 가슴에 고이 묻어둔다. 열두 살이 되었을 때 '튤립'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사람이 품을 수 있는 최고의 것이라 여긴 '호프'로 바꿔 스스로 개척하는 삶을 위한 첫 걸음을 뗀다.

식당 직원이 금고를 들고 도망간 바람에 빈털터리가 된 이모는 새로운 일을 찾아 글리슨 빌에서 멀리 떨어진 미 북부의 소도시로 가기로 한다. 이모와 함께 도착한 그곳은 기대와는 달리 불안정하다. 그럴수록 호프는 글리슨 빌의 나쁜 직원에 대한 원망으로 화를 참지 못한다.

이모는 과거의 아픔이 현실의 희망까지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호프를 설득한다. 부정적인 과거에 얽매여 그것을 곱씹는 동안 진짜 소중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이모의 말에 호프뿐만 아니라 우리도 미래를 향해 눈을 돌리게 된다.

새로 일하게 된 식당 사장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이다. 그럼에도 그는 살아있는 동안 가장 의미있는 일을 하기 위해 시장 선거에 출마한다. 상대 후보는 불의한 방법을 동원해 사장을 음해한다. 배워야 할 어른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게 된 호프는 직원들과 함께 마음을 다해 사장을 돕는다. 하지만 거대한 폭력을 동원한 상대 후보의 모략에 사장이 버틸 수 없게 되자 호프도 절망에 빠진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얘야, 햇볕의 힘을 기억하렴."

평범한 이웃 할머니가 일러준 말이 호프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마침내 어둠에 속했던 모든 것이 햇볕 아래에서 훤히 드러나고, 새순같은 사장의 진심은 햇볕을 향해 가지를 뻗고 강해진다. 호프를 비롯한 종업원들은 진실의 힘이 이기게 되는 경험을 하며 감격한다.

아버지는 다른 방법으로 호프에게 나타난다. 사장은 소중히 키우던 나무에 다른 나뭇가지를 가져와 접붙이기를 하며 자신과 호프가 부녀지간이 될 것임을 보여준다. 사장은 이모와 결혼했고, 호프의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된다. 햇볕의 힘을 믿는 호프는 당당히 서서 미래를 계획하고 새로운 걸음을 내딛는다.

책을 덮을 때쯤 호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햇볕의 힘을 기억하렴."

정순희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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