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이나 장르소설에서 저자의 마력에 홀려든 적이 제법 있다. 대개는 반전 구성과 세계관의 스케일 덕분인데 의외의 문장력에서 무릎을 치는 경우도 적잖다. 필명 뒤에 숨어있는 작가의 실체를 알 수는 없으나, 보통 내공이 아님을 보는 내내 찬탄하기 마련이다.
'푸른 머리카락'으로 제5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은 남유하 작가의 호러 장르 단편집 '양꼬치의 기쁨'도 그런 부류다. 그는 이미 기이한 환상동화 '나무가 된 아이',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SF '다이웰 주식회사'로 주목을 받은 터였다.
평범한 일상에서 연쇄적으로 범람하는 두려움이 현실과 꿈을 헤맨다. '설마 그럴 리가'라는 상상을 거침없이 쌓아올려 엮은 이야기 10편이다.
장르소설의 묘미는 기묘한 상상력에서 나온다. 그런데 소설집 '양꼬치의 기쁨'은 무작위로 뻗어나가는 상상을 짧은 호흡의 문장으로 잡아챈다. 독자의 숨이 가빠지는 요인이다. 단문은 얇은 바늘로 박음질하듯 문단과 전체 흐름을 바투 잡는다. 등장인물의 감정 기복을 고스란히 전하는 비결이다. 물론 공포로 몰아가던 와중에 더러 시적인 표현도 섞여 있어 "이게 무슨 조화냐"는 말이 불쑥 나오기도 한다.
짧게 치고 빠지는 이야기들이다. 밀도 높은 상황 설정이 필수다. 독파에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어쩌면 단순한 이야기 전개다. 표제작 '양꼬치의 기쁨'에서는 양꼬치 가게에 갔더니 고기가 다 떨어졌는데 핵심 메뉴 이름이 '남편 양꼬치'다.

놀이공원 '귀신의 집'에 들어가면 굴곡지점이라든지, 의외의 공간에 놓인 물건은 으레 귀신이 나온다는 알림 표시 역할을 한다. 공포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공포물의 고전이 된 상황들을 차용한 작품도 보인다. 작품 '닫혀 있는 방'은 그런 공식에 충실하다. 한집에 사는 시어머니와 불화를 못 견디고 뛰쳐 나온 며느리가 급히 계약한 1년짜리 사글세집에는 쓸 수 없는 방이 하나 있다. 소설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속 방이 겹친다.
공포소설 마니아들은 글을 읽으며 상황을 그려나가기 마련인데, '양꼬치의 기쁨' 속 작품들은 독자 스스로가 배경 지식과 연결해 상상하도록 한다. 공포의 자가발전이다. 그런 점에서 독특한 발상도 있다. 죄의 대가로 갖고 있던 능력치를, 당연하다 여기던 생리적 능력을 하나씩 빼앗는 설정의 작품 '상실형'에서는 근대식 형벌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쾌재를 부를지도 모른다.
엉덩이를 때리는 태형을 전근대적이라 얕잡아 봤다면 생각을 고쳐먹게 된다. 설상가상 인권은 해당 사항이 아니다. 신체 부위를 자른 뒤 살게 한다거나 장기 일부 기능을 훼손하고 살아가게 만든다. 분노가 극대화되면 살의에 정당성이 부여되기도 한다.
한때 공포물의 대세였던 좀비소설도 연작으로 준비돼 있다. '기억의 꿈'과 '내 이름은 제니'는 시선을 달리한 두 작품이다. 표사를 쓴 듀나 작가는 "얼핏 보면 남유하의 우주는 덜컹거리는 자본주의 사회시스템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객관적 세계와 비슷해 보인다"고 썼다. 그럼에도 짐짓, 부모의 지도가 필요한 'P.A'(Parental Advisory) 스티커가 어디에 붙어있나 찾게 된다. 332쪽. 1만4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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