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주택가의 상가는 주변 주택들과 대개 닮아있다. 이질감을 주지 않는다. 중뿔나게 다른 모양을 하고 있으면 주민들의 일상에 스며들기 쉽진 않을 것이다. 2020년 9월 경주시 황오동 주택가에 생긴 책방도 오래된 상점의 내부만 개조한 것처럼 보였다. 원래 있던 모양 그대로인 것 같은, 키 낮은 1층 건물이었다.
이곳에 책방을 연 정은정 씨는 '책방 매화'라는 이름을 붙였다. 2020년 9월이면 코로나 시국이 끝을 알 수 없을 때다. 그 즈음에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지만 직장을 나왔다고 절망하며 살 인생은 아니지 않은가. 정 씨는 마음을 다스리는 데 제격인 '에세이 책방'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책방을 열겠다고 뚝딱뚝딱 공사를 한창 하고 있으니 주변 상인들이 한 번씩 둘러보고 갔다고 한다. 이 집에 뭐가 생길까 궁금해하며 휘둥그런 눈으로 둘러보는 기대감이 반이었고, 포화상태인 요식업장이 하나 더 생기는 게 아닌지 실눈으로 둘러보는 우려감이 반이었다는 거다.
책방이 생긴 게 알려지자 황오동 주택가의 숨은 고수들이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전을 한 박스째 전해준 어르신, 어학용 사전을 몇 권씩 놓고 간 익명의 고수 등 그의 책방을 절반 이상 차지하고 있는 중고책은 뜻밖의 십시일반으로 적립된 증거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책방이 있는 동네는 경주의 오랜 도심 주택가였다. 옛 경주역이 지척인 곳이자 110년 전통의 계림초교와 가깝다.
정 씨는 "책을 나누려는 분들이 잊을 만하면 찾아오셨어요. 거절하지 않고 받아두고 있는데 배보다 배꼽이 커지고 있어요"라며 웃었다.

거침없이 책방을 연 건 김소영 前 아나운서의 에세이 '진작할 걸 그랬어!'의 자극 덕분이었다고 했다. 작게라도 시작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책방을 열기 전, 전국의 책방지기들이 쓴 책을 집중적으로 읽은 것도 용기를 북돋웠다.
여행에세이, 국내에세이들이 손님을 맞는다. 여행 중에 가방에 편하게 넣고 꺼내볼 수 있는 데다 짧은 챕터로 나눠 한 편씩 읽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는 설명이 들려온다. 난생 처음 보는 독립출판사의 에세이도 적잖다. 책방지기 정 씨의 에세이를 향한 폭넓은 애정이 전해진다. 정세랑 작가의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김훈 작가의 '연필로 쓰기', 정지돈 작가의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정도가 소설가들의 에세이다.
'책방 매화'라는 이름은 실제 매실과 직접적 연관이 있었는데, 매실농장을 운영하고 있기에 붙인 것이라 했다. 책을 사면 스티커를 붙여주는데 화투에서 2월을 뜻하는 매화와 닮았다. 책방에는 매실엑기스가 담긴 유리병도 보인다. 경주시 원화로 309번길 18번지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쉰다. 오전 11시 문을 열고 오후 6시에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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