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깊은 마을. 가로등 조명과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불빛만이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골목을 비춘다. 밤의 침묵 끝에 놓인 외로움과 삭막함을 상쇄하는 것은 마을 위로 내려앉은 눈. 눈 오는 밤의 풍경은 역설적이게도 포근하다 못해 따뜻한 온기마저 느껴진다. 정지된 순간의 모습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것도, 생생하게 날리는 눈발이다.
경북 봉화 출신의 김종언 작가는 수년전부터 겨울밤 눈 내리는 풍경을 주제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눈 소식이 들리는 날이면 차에 체인을 감고, 카메라를 챙겨 나선다.
밤새 골목을 돌며 카메라로 찍은 장면들을 캔버스에 옮긴다. 그림에는 집집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밥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 그가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졌을 때 염려하는 주민의 정겨운 말소리 등 그가 듣고 느낀 마을의 숨결이 온전히 담긴다.
작가는 "현장에 가면 1분1초도 쉬지 않는다. 사실 그곳에서는 그림에 대한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동네의 분위기, 그곳에 사는 사람, 그들의 삶에 대한 생각뿐"이라며 "어느 집 대문 앞에 놓인 화분 하나에도 사람의 흔적과 추억이 배어있다. 눈 내린 고요한 밤, 마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생각이 마구 살찌는 듯하다"고 말했다.
눈 내린 밤의 풍경은 환하다. 골목과 지붕 위로 쌓인 눈에 반사된 가로등 불빛은 마치 그림에 진짜 불빛을 비춰놓은 듯한 착각이 들만큼 환하다. 작가에게 새벽께 눈 내린 마을을 비추는 빛은 어떤 의미일까.
"현장에 가보니 사람이 없을 때 사람이 더 많이 보이고, 조용할 때 더 많은 소리가 들리고, 추우니 따뜻함이 더 다가왔습니다. 불빛은 그런 느낌들을 이야기해주는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김종언 작가의 개인전 '밤새'는 25일(금)까지 동원화랑(중구 봉산문화길 42)에서 열린다.
손동환 동원화랑 대표는 "그의 그림 속 진눈깨비 휘몰아치는 철길 건널목을 지나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가면 잃어버린 시간들,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을 것 같아 뒤늦은 설레임에 빠져들고 만다"며 "그가 현장을 찾아 밤새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과정 모두 작품의 일부가 아닐까싶다"고 말했다. 053)42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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