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위창 오세창은 독립운동가이자 미술사학자, 서예가, 전각가인 미술인이다. 오세창은 1918년 13명의 서예가, 화가가 모여 창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미술단체인 서화협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하며 미술계 현장에서 줄곧 활동했다.
오세창은 글씨는 많이 썼지만 그의 안목이나 필력이라면 사군자류 그림이 어렵지 않았을 텐데 그림은 거의 손대지 않았다. 희귀한 오세창의 부채그림인 '묵란'의 제화는 이렇다.
정축(丁丑) 하(夏) 위(爲) 곽인계(郭仁契) 촉(屬)/정축년(1937년) 여름 곽인계의 부탁으로
고정사운(高情似雲)/높은 뜻은 구름 같고
낭회약월(朗懷若月)/밝은 회포는 달 같다
화신당춘(和神當春)/온화한 정신은 봄이요
청절위추(淸節爲秋)/맑은 절개는 가을이라
칠십사수(七十四叟) 오세창(吳世昌) 도(塗)/74세 노인 오세창 그리다
앞쪽에 날짜와 이 작품을 부탁한 사람의 이름을 먼저 써놓고, 부채꼴 바깥쪽 테두리를 따라 둥글게 16자를 전서로 연이어 한 줄로 쓴 다음 자신의 나이와 이름으로 서명했다. 글자 수를 계산해 부챗살이 접히는 칸에 맞춰 한 자 한 자 써 넣어 글씨부채로 완성한 후, 난초는 나중에 슬쩍 그려 넣은 것 같다. 잎이 다섯, 꽃이 둘인 간결한 수묵 난초다.
소장자와 창작자 이름을 모두 넣어 쌍관(雙款)으로 서명하면서 이렇게 앞뒤로 나눠 뚝 떼어 놓는 것은 대련의 서명 방식이다. 길쭉한 두 폭의 그림이나 글씨가 한 점으로 짝을 이루는 대련에서 오른쪽 폭인 상련에 소장자를, 왼쪽 폭인 하련 마지막에 창작자를 표시하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오세창은 서예대련의 쌍관 방식을 부채그림에 적용해 색다르게 서명을 구성했다.
머리도장은 동그라미 두 개를 좌우로 맞물려 쌍원을 만들고 원 안쪽 동그라미를 글자 획으로 활용해 한(閒)자와 운(雲)자를 새긴 '한운'이다. 또한 4언 4구의 마지막 글자를 모아보면 '운월춘추(雲月春秋)'가 된다. 구름과 달을 벗 삼아 여유로운 세월을 누리시라는 뜻이다.
오세창은 '한가할 한(閒)' 자가 들어가는 인장을 많이 새겼다. 그의 인장에서 한 자는 한도인(閒道人), 한도인묵희(閒道人墨戱), 한인묵취(閒人墨趣), 한불한인(閒不閒人), 한혜인(閒兮人), 한중담(閒中淡), 반일한(半日閒), 한공부(閒工夫), 야한(也閒) 등으로 나온다.
오세창은 '근역서화징'으로 우리나라 역대 서예가, 화가의 기초조사를 완성했다. 옛 그림과 글씨를 수집해 '근역화휘', '근역서휘', '근묵' 등 체계적인 컬렉션으로 편집했으며, 인장자료 '근역인수'도 모아놓았다. 혼자 힘으로 이뤄놓은 한국미술사 정전(正典)이다. 한가할 겨를이라고는 도무지 없었을 것 같은 오세창이 한(閒) 자를 좋아했다는 사실이 뜻밖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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