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갑다 새책]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최양현·최영우 지음/ 효형출판 펴냄

일제강점기 부산 서면에 있었던 노구치 부대 모습. 최영우 씨도 이곳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효형출판 제공
일제강점기 부산 서면에 있었던 노구치 부대 모습. 최영우 씨도 이곳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효형출판 제공
싱가포르 창이형무소. 최영우 씨가 전범 용의자로 지목돼 수감됐던 곳이다. 효형출판 제공

태평양전쟁 개전 직후인 1941년 겨울. 일제는 조선인도 집안에서 1명 이상은 참전해야 한다는 억압적 분위기를 형성했다.

1923년 전북 남원 삭녕 최씨 집성촌에서 4남 3녀 가운데 둘째 아들로 태어난 최영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2차 대전의 전선이 확대되던 1942년, 장남을 대신해 일본군 군속(軍屬, 군무원에 해당) 채용에 응시한다. 늘 호기심을 가졌던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2년 동안 돈도 착실히 모을 수 있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집집마다 징병이나 징용을 보내야 한다는 압력 속에서 작은아버지의 권유를 떨치긴 어려웠다.

그는 결국 부산에서 두 달간의 혹독한 군사훈련을 마치고 남쪽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19살 소년은 이때까지만 해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국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며 새 출발에 대한 기대감에 젖어 있었다.

그런 그가 도착한 곳은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한 포로수용소. 포로를 관리하는 그의 일은 징병이나 징용만큼 가혹하진 않았지만, 기대했던 꿈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일본군의 전세는 점점 기울었고. 그럴수록 그가 처한 상황도 열악해져만 갔다. 급기야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자 그는 연합군의 포로가 됐고, 전쟁범죄자 신분으로 재판정에 서게 된다.

최영우와 함께 유죄판결을 받은 조선인은 무려 148명. 이들 중 23명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다행히 그는 2년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1947년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2002년 세상을 떠나기 전, 틈틈이 당시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외손자 최양현 씨가 육필 원고와 주변인 증언을 토대로 그의 삶을 재구성한 책이다. 당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지은이는 지난 10년 동안 관련 논문을 읽고 전문가를 만나며 외할아버지가 남긴 글의 전체적 맥락을 이해해갔다. 그 결과 격동의 시기를 겪어낸 평범한 스무살 조선인 청년의 삶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의 감정과 심리를 들여다보는 여정을 통해 당시를 살았던 수많은 무명인이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를 어떻게 느끼고 바라보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228쪽, 1만4천원.

싱가포르 창이형무소. 최영우 씨가 전범 용의자로 지목돼 수감됐던 곳이다. 효형출판 제공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