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못지않게 학부모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학기 초 반장 선거였다. 서로를 잘 모르는 학기 초에는 매력적으로 자신을 알리는 아이들이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 1970, 80년대에는 웅변이라는 사교육의 은총으로 달변의 재능을 캐내기도 했다. 소심한 성격을 고치겠노라 갔다가 재담꾼으로 거듭나는 기적도 있었다. 당대 유행했던 반공 웅변대회 때마다 대표로 출전해 상장도 재깍 받아오니 엄마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대중 연설이 흔치 않은 요즘이다. 그렇다고 설복의 기술적 효용이 사라진 건 아니다. 찬조 연설가들은 선거 때마다 귀하신 몸이 된다. 이들은 연설의 기술이 무대 체질과 연관 있다고 한다. 무대 울렁증 극복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1980, 90년대 총학생회장들을 떠올린다. 구전되는 집회 연설 무용담이 겹친다. 그들의 워딩이 어땠다는 세세한 기록은 없다. 여러 사람의 기억이 증거다 보니 윤색되기도 한다. 이념적 선명성이 바탕에 깔려 있다. 결기를 뿜어내던 그들의 연설은 20대의 혈기를 기개로 바꾸는 주문과 같았다.
연설이라 칭하기 모호하지만 달변가로 약장수도 떠오른다. 사라진 장터의 수만큼 자취를 많이 감췄다. 약효가 검증된 것도 아닌데 그의 혀에 여러 지갑이 열렸다. 김훈 작가도 성남 모란시장에서 연장을 파는 장사꾼의 유수 같은 말솜씨에 흔쾌히 모종삽을 샀다고 산문집 '연필로 쓰기'에 남겼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이 화제다. 수도 키이우를 지키며 이어가는 화상 연설이다. 말이 연설이지 도와달라는 읍소다. 그는 특히 연설 대상 국가의 역사적 경험을 소재로 끌고 온다. 이를테면 미국 하원에서 진주만 공습의 충격을 사례로 드는 것이다. 동질감을 형성하는 맞춤형 연설이다. "당신이 겪은 걸 우리도 겪고 있다"라는 동병상련의 연대감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리 국회에도 모습을 보일까. 현재 재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의원들 사이에서 부정적 기류가 강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젤렌스키 대통령의 다음 연설은 23일로 예정된 일본 의회다. 미국 의회 연설에서 일본에 의문의 1패를 안긴 그가 어떤 이야기로 일본의 공감을 끌어낼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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