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파친코’ 전 세계 호평, 그 이유는?

애플TV+ ‘파친코’에 깃든 이민자, 여성 서사

드라마 '파친코' 포스터. 애플TV+ 제공
드라마 '파친코' 포스터. 애플TV+ 제공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가 서비스되자마자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언론‧평단들은 호평과 찬사를 쏟아냈다. 심지어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진 일본에서조차 호평이 나왔다. 도대체 한국사를 담은 '파친코'의 무엇이 글로벌 찬사를 만들어내는 걸까.

◆글로벌 시대에 일제강점기 소재?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는 그 원작소설부터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꾸준히 추천도서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9년 추천했던 소설로 '파친코'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남겼다. "첫 문장부터 당신을 끌어당기는 매혹적인 책!"이라고. 그 첫 문장은 이렇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드라마 '파친코' 역시 시작 전 짧게 요약된 자막이 먼저 시선을 잡아끈다. '1910년 일본은 제국을 확장하며 한국을 식민지로 삼았다. 일제 치하에서 많은 한국인이 생계를 잃고 고향을 뒤로하고 외국 땅으로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견뎠다. 가족들은 견뎠다. 여기 몇 세대에 걸쳐 견뎌낸 한 가족이 있다.' 일제강점기가 다뤄질 것이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은 한국인들의 이야기가 한 가족의 서사를 통해 담겨질 거라는 걸 이 문장은 말해준다.

드라마 '파친코'의 한 장면. 애플TV+ 제공
드라마 '파친코'의 한 장면. 애플TV+ 제공

'파친코'는 자막만으로도 어딘가 대작의 향기가 풀풀 나는 작품으로, 먼저 떠오르는 건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1991)같은 고(故)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가 함께 했던 시대극이다. 또 이현세 화백이 한국과 일본의 가상전쟁을 다룬 '남벌'(1994)도 떠오른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일 관계는 축구나 야구를 해도 마치 전쟁같은 분위기가 피어오르던 시대로, 당시 일제강점기를 다룬 콘텐츠들은 한일 간의 대결구도가 극화돼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지나친 민족주의적 관점이 '국뽕'이라 비판받기도 하는 현 시대에 '파친코'가 가져온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는 이례적인 느낌마저 준다. 물론 일본의 역사왜곡은 최근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주장을 고스란히 담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그러나 콘텐츠가 국경을 넘어 글로벌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여 제작되기 시작하면서 일본과 중국같은 인접국과의 역사문제는 다뤄지긴 해도 첨예하게 다뤄지진 않는 경향이 생겼다. 물론 '미스터 션샤인' 같은 최근작은 다소 예외적이다. 멜로‧액션 같은 장르물의 성격이 강했지만 일제와 싸운 의병들의 이야기를 다뤘고 일제의 만행도 공공연히 등장했다.

여기에는 일본보다 훨씬 더 커진 중국시장의 영향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사드 배치로 인한 한한령이 있었긴 하지만 '태양의 후예'같은 작품으로 중국에 암암리에 막강한 팬덤이 생겼던 시점이었다. '미스터 션샤인'은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고 그 플랫폼을 통해 세계에 공개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상대로 국내에서는 화제가 됐지만 글로벌한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드라마 '파친코'의 한 장면. 애플TV+ 제공
드라마 '파친코'의 한 장면. 애플TV+ 제공

◆해외에서 호평 쏟아진 '파친코'

'파친코'도 정면으로 일제강점기를 다룬다. 첫 회부터 일제에 의해 핍박받는 민초들의 서사가 그려진다. 주인공인 선자(김민하)가 고국을 떠나 일본으로 가게 되어 '조센징'이라 불리며 고통 받는 삶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우리로서는 어쩌면 익숙한 이야기들이지만, 놀랍게도 '파친코'에 대한 호평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타전되었다. 공개직후 미국의 비평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100%를 기록했고(현재는 98%), 영국 BBC는 "눈부신 한국의 서사시"라는 평과 함께 별점 만점을 줬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지금까지 나온 애플 최고의 쇼"라는 찬사를 내놨고, 미국 더버지는 "이민진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애플TV+의 가장 야심찬 프로젝트"라며 "문화적 정체성, 민족사, 세대 간 기억과 애도를 묻는 숭고한 서사시"라는 분석을 내놨다. 또 미국 타임지는 "한‧미‧일 삼중언어로 구성된 고예산 시리즈가 슈퍼 히어로와 섹스, 화려한 액션 없이 성공한다면 비슷한 다른 시리즈에 청신호를 주며 연쇄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놨다.

반면, 일본 누리꾼들은 일본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파친코'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 경제사학 교수는 한일합병이 (한국에) 경제적 이익을 줬다고 했다", "파친코는 허구다. 일본 정부는 불법 이민자였던 자이니치를 보호했고 2세까지 남을 수 있게 허용해줬다", "재일 한국인들은 여전히 일본에서 범죄와 사기의 온상인데 이를 지나치게 미화했다" 등의 비난과 함께 '파친코'가 역사왜곡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런 반응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애플TV+ 자체가 일본에서 애용되는 메인 OTT가 아니기 때문이다.

드라마 '파친코'의 한 장면. 애플TV+ 제공
드라마 '파친코'의 한 장면. 애플TV+ 제공

◆이민자, 여성서사, 한국에 대한 관심

'파친코'가 흥미로운 건 지금껏 우리가 만든 작품들이 하지 못했던 걸 이 작품이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일제강점기를 다룬 많은 작품이 있었지만, 그것이 해외에서까지 글로벌한 공감대나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던 게 사실이다. 대부분 자국의 민족주의적인 관점들이 강하게 투영되다보니 국내와 해외가 느끼는 '체감의 격차'를 작품들이 넘어서지 못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파친코'는 미국 자본으로 만들어졌고, 한국계 미국인들이 대본부터 연출, 연기까지 맡게 됨으로써 갖게 된 독특한 관점이, 글로벌한 공감대를 만든 요인이 됐다고 볼 수 있다. '파친코'는 살기 위해 조선을 떠나 타국을 떠돌게 된 자이니치(재일 한인) 가족의 4대에 걸친 생존기를 그리고 있지만, 이 이야기는 외국인들의 관점으로 보면 '이민자의 삶'이라는 공유지점을 갖고 있다. 낯선 땅에 오게 되어 그 곳에서의 쉽지 않은 삶의 과정을 담았다는 측면이 그렇다.

이민자의 시선은 독특한 경계인의 관점을 갖기 마련이다. 미국인이지만 한국인의 역사와 말을 공유한다. 그래서 한국인 특유의 정서가 남아 있지만 동시에 미국인의 감성도 더해져 있다. 이런 지점은 '파친코'가 원작과 달리 192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과 1989년 미국 뉴욕, 일본 오사카‧도쿄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야기 구성에 잘 녹아 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젊은 선자가 한수(이민호)와 만나 원치 않는 아이를 갖게 되고, 그래서 이삭(노상현)과 결혼해 일본 오사카로 떠나 그 곳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와, 1989년 노년의 선자(윤여정)가 뉴욕 본사에서 비즈니스 때문에 일본 오사카로 와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시공간을 종횡무진 옮겨가는 구성인데, 이것이 자연스러운 건 경계인의 시점이 잘 녹아 들어 있어서다.

드라마 '파친코'의 한 장면. 애플TV+ 제공
드라마 '파친코'의 한 장면. 애플TV+ 제공

게다가 '파친코'는 이 시공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선자라는 인물의 삶을 통한 '여성 서사'를 내세웠다. 한 여성이 어떻게 그 모진 시대의 무게를 버텨냈는가 하는 점이 이 드라마가 가진 최대의 관전 포인트다. 그래서 선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 감동 속에 이 여성이 가진 강렬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게다가 이 생명력은 언청이(구순열)라는 장애를 가졌지만 당당한 삶을 설파했던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이 여성서사와 더불어 약자와의 연대까지 담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런 점에서 '파친코'의 성취는 경계인이라는 색다른 관점이 더해져 한국사에 이민자의 시선과 여성 서사까지 투영된 면에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최근 들어 K콘텐츠들이 글로벌 열풍을 일으키면서 외국인들이 갖게 된 한국에 대한 높아진 관심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로컬 색깔이 확실한 한국사에 대한 이야기가 글로벌 공감대를 가져갈 수 있었던 건, 보편적 시선을 더할 수 있게 된 경계인의 관점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드라마 '파친코'의 한 장면. 애플TV+ 제공
드라마 '파친코'의 한 장면. 애플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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