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남편의 숱한 외도와 오랜 투병생활…딸·집 모두 빼앗겨 길거리로

커서 선생님 될꺼라는 꿈 결혼과 동시에 무너져
보일러 없는 집에서마저 쫓겨나야 할 신세

정은수(가명·66) 씨가 반지하 단칸방에 놓인 침대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배주현 기자
정은수(가명·66) 씨가 반지하 단칸방에 놓인 침대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배주현 기자

"미자야, 우리 커서 꼭 선생님이 되자"

정은수(가명·66) 씨가 꿈을 꾼다. 교복을 입은 정 씨는 단짝이었던 친구 미자와 교실 한 가운데서 새끼손가락을 건다. 시간은 훌쩍 흘러 선생님이 된 미자가 정 씨 앞에 서 있다. 미자에게 손을 뻗어보지만 미자는 점차 멀어져간다. 그리고는 사방의 꽉 막힌 벽들이 정 씨에게 다가온다. 정 씨는 숨이 턱 막혀 벗어나려 발버둥을 쳐본다.

안간힘을 쓰다 겨우 정 씨는 눈을 떴다. 반지하의 낡은 단칸방, 침대 위 정 씨의 몸은 땀으로 푹 젖어있다.

◆끝없는 남편의 외도

꿈 많던 소녀의 삶은 결혼과 동시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십 대 중반에 한 결혼, 정 씨는 남편과 연년생 두 딸을 낳고 살았지만 남편은 툭하면 외도를 일삼았다.

정 씨는 어린 두 딸을 데리고 다방을 들락날락하던 남편을 참 많이도 찾으러 다녔다. 등에는 갓 난 둘째 아이를 업고 한쪽 손에는 첫째 딸의 손을 쥐고 남편을 찾으러 갔지만 그는 "돌아가라"며 이들을 밀쳤다. 바닥으로 내 던져지는 비참함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남편의 사과와 정 씨의 용서가 반복되는 삶을 살았다. '새 삶을 살겠다'는 남편의 약속에 이들은 대구로 이사 왔다. 약속은 힘없고 가벼웠다. 대구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한 여성이 집으로 와 남편을 찾았다. 또 외도였다. 오랜 외도로 정신이 무너질 때로 무너져버린 정 씨는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은 끝까지 염치없었다. 정 씨는 집과 두 딸을 모두 빼앗긴 채 길거리로 나왔다.

황량함과 외로움만 남았다.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정 씨를 감쌌다. 매일 술로 마음을 달랬고 거리에서 노숙 생활을 했다. 피폐해진 삶이 계속 밑바닥으로 향하던 차 친구가 내민 도움의 손길로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정 씨의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가 방을 하나 얻어주고 보험회사를 소개해줬다.

나중에 다시 딸을 만나게 됐을 때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마음가짐 하나로 정 씨는 죽어라 일만 했다.

◆오랜 투병 생활

요즘 정 씨의 일과는 침대에서 시작해 침대에서 끝난다. 큰 철심이 들어간 다리 때문에 꼼짝을 못한다. 재개발 지역의 한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정 씨의 집에는 햇볕과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는다. 방 침대 위에 놓인 전기매트가 유일한 온기다.

그토록 열심히 일했지만 정 씨를 찾은 건 '딸'이 아닌 '병'이었다. 다리 통증이 잦았지만 관절염이겠지 싶어 모른 체 했다. 뒤늦게 찾은 병원에서 다리는 절단 직전으로 괴사했고 염증이 심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어린 시절 앓았던 결핵으로 결핵균이 아직 몸에 남아 뼈를 상하게 했던 것이었다. 염증이 심해 다리가 크게 부풀러 올랐고 무릎에 합병증까지 왔다. 벌써 20년 가까이 숱한 다리 수술과 입‧퇴원을 반복했다. 보험회사를 다니며 벌었던 돈과 퇴직금은 모두 치료비로 사용했다. 그마저도 부족해 주위에 돈을 빌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삶, 수중에 돈이 없던 정 씨는 그렇게 반지하 단칸방으로 들어왔다. 이곳에서 기초생활수급비 65만원을 받으며 지인에게 빌렸던 치료비를 조금씩 갚으며 살아간다. 딸이 너무 보고 싶지만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딸은 자신들을 두고 떠났다는 생각에 더는 엄마를 찾지 않는다.

없는 살림에도 주위 어려운 이웃에게 반찬을 나눠주며 정 씨는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보일러가 없어 한겨울에도 찬물에 머리를 감지만 그저 집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하지만 이제 집에서마저 쫓겨나야 할 신세다. 재개발 공사로 이사를 해야 하지만 돈이 없다. 복지관의 도움으로 임대주택 신청은 해놨지만 보증금 200만원이 없어 포기해야 할 처지다.

죽을 때 죽더라도 따뜻한 집에서 따뜻한 물에 머리 한 번 감아보는 게 소원이라는 정 씨. 꿈 많던 소녀의 삶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지만 '이 또한 지나간다'는 굳은 믿음 하나로 꿋꿋하게 삶을 버티고 있었다.

*매일신문 이웃사랑은 매주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을 소개된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액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성금을 전달하고 싶은 분은 기자의 이메일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기부금 영수증 처리는 가정복지회(053-287-0071)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 이웃사랑 성금 보내실 곳

대구은행 069-05-024143-008 / 우체국 700039-02-532604

예금주 : (주)매일신문사(이웃사랑)

▶DGB대구은행 IM샵 바로가기

(https://www.dgb.co.kr/cms/app/imshop_guide.html)

[지난주 성금내역]

◆연락 끊긴 엄마가 떠넘긴 빚에 시달리는 배지효 씨에 2,416만원 전달

매일신문 이웃사랑 제작팀은 미혼모 엄마에게서 태어난 뒤 평생 가족 사랑도 받지 못하고 살다, 엄마가 떠넘긴 빚더미에 시달리는 배지효(매일신문 3월 29일 자 10면) 씨에 2천416만7천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에는 ▷비엘개발 유한회사 20만원 ▷박전호 20만원 ▷박옥선 5만원 ▷곽병완 3만원 ▷배영철 2만원 ▷신종욱 2만원 ▷곽민정 1만원 ▷'사랑합니다' 5만원 ▷'따스한햇살' 5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편과 이혼 뒤 지적장애 남동생 부부 돌보는 원향미 씨에 2,043만원 성금

사업이 망한 뒤 남편과 이혼하고 지적장애 남동생 부부를 홀로 돌보는 원향미(매일신문 4월 5일 자 10면) 씨에 45개 단체 142명의 독자가 2천43만2천500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 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건화문화장학재단 200만원 ▷DGB대구은행 1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100만원 ▷㈜태원전기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양홍석)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재)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매일탑리더스아카데미 16기 동기회 일동 20만원 ▷매일탑리더스아카데미 7기 동기회 일동 20만원 ▷㈜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삼이시스템 10만원 ▷㈜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태광아이엔씨(박태진) 10만원 ▷㈜천마자동차전문학원 10만원 ▷IBS(전병집) 10만원 ▷김영준치과 10만원 ▷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원일산업 10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더좋은이름연구소(성병찬) 5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선진건설㈜(류시장)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제이에스테크(김혜숙) 5만원 ▷참한우소갈비집(신동애)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국선도평리수련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대원전설(전홍영) 2만원 ▷모두케어(김태휘)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도경희 380만원 ▷김상태 100만원 ▷이정추 60만원 ▷김진숙 50만원 ▷이신덕 30만원 ▷문심학 박철기 신금자 이양우 각 20만원 ▷곽용 김화영 백로열 이난영 이재일 전시형 조득환 진국성 최영조 최영철 최창규 각 10만원 ▷김종찬 백미화 변대석 안대용 오소춘 위옥자 유윤옥 윤선희 이경자 이경자 이종하 이창영 임채숙 전우식 최상수 최종호 최한태 각 5만원 ▷여환주 4만원 ▷라선희 3만3천원 ▷강상금 권규돈 김건희 김리아 김준홍 김태상 문석 박의만 변현택 신광련 이서연 이서현 이석우 이종완 이현경 하경석 각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김강현 2만2천원 ▷곽희열 김대식 김원옥 김태욱 김태천 남영희 류휘열 박기영 박임상 박지혜 송재일 우순화 유귀녀 이운호 이재숙 이해수 진형구 최승연 한정화 허정 홍준표 각 2만원 ▷표운기 1만8천500원 ▷강명은 고장환 권보형 권오영 권재현 김삼수 김상근 김성옥 김영수 김윤희 김은영 김재동 문민성 박건우 박애선 박홍선 배상영 백진규 신기환 안현준 오옥자 우철규 윤인주 이병순 이성우 이승범 이재민 장문희 전국진 전지원 정다운 정준홍 조경희 조영식 지호열 최경철 최선혜 황성광 각 1만원 ▷서제원 손희정 이진기 이형준 홍미선 각 5천원 ▷김건율 이장윤 각 2천원 ▷김기만 1천원

▷'주님사랑' '홍종배베드로' 각 10만원 ▷'김지수현수' '매주5만원' 각 5만원 ▷'동차미' 3만4천원 ▷'지원정원' '해프닝' 각 3만원 ▷'강해만이진주' '민준.찬' '석희석주' '힘내세요' 각 2만원 ▷'조희수건강회복' '지현이동환이' 각 1만원 ▷'애독자' 5천원 ▷'지성이' '채영이' 각 2천원 ▷'무명' 1천원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