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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수출화로 보는 19세기 말 조선의 풍속

미술사 연구자

김준근(?-?),
김준근(?-?), '광대 줄 타고', 종이에 채색, 29.8×35.8㎝, 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소장

19세기 말 이른바 '수출화'로 외국으로 팔려 나간 김준근의 풍속화 '광대 줄 타고'다. 오른쪽 위에 제목과 호를 새긴 인장 기산(箕山)이 있다. 줄광대는 버선발로 높은 외줄을 타며 놀음 중이고 아래엔 어릿광대 배우씨가 있다. 배우씨는 줄 위에서 부리는 재주를 익살스런 재담과 몸짓으로 묘사하며 극적 효과를 돋우고, 줄광대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역할을 한다.

짝을 이룬 주역과 보조역 모두 부채를 들었다. 부챗살에 검은 칠을 하고 선면이 붉은 홍선(紅扇)이어서 눈길을 확 끈다. 줄광대는 부채를 반쯤 펼쳤고 어릿광대는 활짝 펼쳤는데 노란 수건을 달아놓은 것은 동작을 활달하게 보이게 하고 땀도 닦는 용도일 것이다.

부채는 공연 예술가의 요긴한 도구다. 펼쳤다 접었다하며 공연의 흐름과 내용에 따라 시각적 변화를 주고, 탁탁 두드리거나 펼칠 때 나는 소리로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하며, 그때그때 필요한 소품도 대신한다. 판소리에서 부채는 만능이다. 소리꾼 홀로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노래와 설명과 몸짓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판소리는 무대장치나 공연 소품이 없다. 부채는 옥중의 춘향이 이도령에게 보내는 편지도 되고, 효녀 심청이 인당수로 떠나기 전 아버지께 올린 마지막 밥상도 된다.

줄광대가 흰 고깔을 쓰고 소매가 넓은 승복을 입고 있어 줄타기 공연 레퍼토리 중 '중 놀이' 대목이다. '중 타령'을 비롯해 파계승을 풍자하는 노래도 부르고, 중의 걸음걸이나 앉은 모양을 줄 위에서 흉내내기도 한다. 줄타기는 전문 장비가 설치돼야하고 훈련된 예인이 줄 위를 걸어 다니며 펼치는 난이도 높은 고급 공연이어서 반주도 삼현육각을 제대로 잡혔다. 둥글게 둘러앉은 6명의 재비, 잽이로 불렀던 악사가 아쟁, 향피리, 대금, 북, 장구 등으로 반주를 넣고 있다. 잽이는 매호씨라고도 했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으로 여겨지는 김준근은 원산, 초량, 인천 등 개항장에서 1880~90년대에 풍속화를 그렸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게 거의 없지만 '기산 풍속화'로 불리는 그림은 많이 남아 있다. 외국에 더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여행 기념품으로 또는 서양 제국주의의 아시아 연구를 위한 인류학적, 민족학적, 식민주의적 시각자료로 팔려 나갔기 때문이다.

기산 풍속화는 19세기 말 조선인의 생업과 의식주, 의례, 세시풍속, 놀이, 여가 등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귀한 그림이다. 그러나 내부의 행위 주체들이 아닌 외부의 관찰자 입장을 반영한 상품이라는 한계 또한 분명하다. 지금은 21세기 한국인에게 19세기 한국인의 풍속을 알려주는 자료다. 김준근의 풍속화 속 풍속이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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