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 근로자들이 '폭염'에 신음하고 있다. 매년 여름철 건설 현장마다 온열 질환 산업재해가 잇따르고, 올해는 때 이른 폭염에 더 고통받고 있지만 정부 및 지자체 대책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국적으로도 건설 현장은 온열질환에 가장 취약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2021년 5년 간 온열질환 산업재해 발생자는 모두 182명으로 이 중 87명(47.8%)이 건설업에서 발생했다.
특히 올여름엔 예년보다 무더위가 빨리 찾아오면서 건설현장 온열질환자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상청은 올여름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이 40~50%인 것으로 예측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건설현장 직접 체험해보니
"일하려면 더위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요…"
지난 4일 오전 찾은 달서구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공사장. 천막으로 세워진 휴게시설에서 만난 근로자 정유봉(65) 씨가 안전모를 벗어 천으로 덧댄 안감을 손으로 꾹꾹 눌러보더니 "벌써 물기가 가득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오전 이른 시간임에도 정 씨의 등은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얼굴에도 연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캔 커피로 잠시 숨을 돌린 정 씨는 다시 철근 콘크리트 속으로 뛰어들었다.
정 씨를 따라다니던 취재진의 옷 역시 금세 땀범벅이 됐다. 기온이 아직 채 30℃가 되지 않은 아침 시간이었지만 공사장 입구에서 안전모를 착용하자마자 얼굴과 목덜미에 땀이 흘러내렸다.
현장 구석구석에 들어서자 땀이 흘러내리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구름이 많은 흐린 날씨였지만 콘크리트 타설과 이미 달아오른 철근 열기가 몸에 그대로 느껴졌다. 체감온도가 순식간에 3~4도로 올라간 느낌이었다.
이곳의 대다수 근로자는 더위에도 옷으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천 마스크를 얼굴 전체에 둘렀고 긴팔 셔츠 위로 팔 토시를 한 겹 더했다. 이들은 "숨이 턱턱 막혀도 피부가 따가운 것보다 낫다"고 입을 모았다. 햇볕에 장시간 노출되다 보니 피부가 타는 것을 넘어 벗겨지면서 고통이 크다는 것이다.
◆무늬만 휴식 장소
산업안전보건규칙과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업은 공사장 현장에 근로자들이 쉴 수 있는 휴식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 권고사항에 불과할 뿐 갖춰진 현장은 보기 드물다는 게 근로자들의 설명이다.
현재 대구시의 관리대상에 해당되는 1만㎡ 이상 건설현장은 모두 178개다. 하지만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대구경북건설지부(이하 건설노조 대경지부)는 대다수가 휴게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방 중소 건설사 또는 경북 외곽 지역의 공사 현장일수록 휴게 시설이 없거나, 형식적인 설치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부터 3명 이상의 열사병 환자가 발생하면 중대재해법 처벌대상이지만 이에 대한 대비책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건설노조 대경지부 관계자는 "매년 여름철을 맞이해 공사 현장에 휴게시설, 그늘막, 물 공급 등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며 "건설사 규모에 따라 휴게시설이 천차만별이다. 냉방기까지 갖춰진 곳이 있는 반면 간이 천막조차 없어 그늘진 바닥에 맨몸으로 누워 쉬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작업중지권도 '공기'(工期) 앞에선 무용지물
이날 취재진이 찾은 공사장 현장은 천막으로 설치된 간이 휴게실이 3곳, 그늘에 마련된 무더위 쉼터가 2곳이었다. 무더위 쉼터엔 누워 쉴 수 있는 의자와 이동식 냉방기 2대도 마련됐다.
하지만 근로자는 이마저도 그림의 떡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정작 휴게시설이 있어도 편히 물을 먹고 휴식을 취하기란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근로자 주모(65) 씨는 "천막 휴게시설이 공사장 내 3곳이나 배치돼 있지만 작업장에서 일하다 막상 휴게시설까지 가기 어렵다. 빨리 돌아가는 작업장에 어느 누가 쉬자고 그곳까지 가겠느냐. 제자리에서 허리 펴고 숨 한번 돌리거나 작업장 옆에 비치된 생수를 들이키는 게 전부다"라고 하소연했다.
폭염경보 발령 시 내려지는 '작업중지권'도 무용지물이다.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은 폭염경보가 발령되면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 사이 옥외작업을 중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공기(工期)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작업이 중지된 적이 거의 없다는 게 건설 노동자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건설노조 대경지부 관계자는 "작업 중지도 권고사항에 불과할 뿐 의무가 아니다. 작업중지가 많아지면 자연스레 공사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작업을 하지 않을 때 근로자의 임금은 어떻게 보전할지에 대한 방안도 없다. 현장은 전혀 모른 채 만들어 둔 폭염대책다"이라고 지적했다.
◆5년 동안 온열질환 산재 처리 단 1건
열사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부분 현장에서 하도급 사업주와 근로자가 '공상 처리' 등으로 종결하는 경우가 다수라는 주장이다. 근로자는 일자리 걱정에 하루 이틀 쉬다 다시 복귀하는 경우도 많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온열질환자 산재 처리는 건 단 1건에 불과했다. 대구의 한 건설업체는 "산업재해보험처리가 되려면 4일 이상 요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해당되는데 온열질환은 사망 또는 당일 휴식 후 괜찮은 경우가 많기에 사망하는 경우에만 산업재해처리가 된다"며 "4일 미만의 요양이 필요할 경우 직영 또는 하도급 사업주가 보상해준다"고 말했다.
공사장 폭염 대책 상황을 관리·감독 맡아야 할 대구시와 고용노동청은 소극적인 모습이다. 이들은 폭염 대책에 적극적인 홍보와 점검을 병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각 구·군청과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며 물과 그늘 구비에 대해 안내를 부탁드리고 점검하고 있다. 다만 인력 한계와 기본 업무가 있기에 한꺼번에 많은 점검을 나서긴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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