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희 여사의 '조용한 내조' 재평가

다자회담 계기 '영부인 역할론'
尹대통령 해외 순방에 동행, 현지 심장병 병원 방문 눈길
역대 영부인들 소극적 행보…말춤·대통령기 단독 사용 등 김정숙 여사 '돌발행동' 대조
권양숙‧김윤옥 여사 조용한 내조 집중…이휘호 여사, 유엔 특별 총회 기조연설
美 역대 퍼스트레이디 대부분 대외활동 활발…힐러리 클린턴‧미셸 오바마 사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환영 오찬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최근 G20-아세안정상회의 등 다자회담에서 비공개 일정 위주의 조용한 내조를 하면서 재평가를 받고 있다. 순방 중 심장병 환아 방문을 두고 여야 간 공방이 펼쳐지면서 '영부인 역할론'도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18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김 여사는 캄보디아 측이 준비한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 각국 정상 배우자 프로그램인 앙코르와트 방문 대신 선천성 심장 질환을 앓고 있는 아동 로타의 집을 비공개로 찾았다.

특히 로타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를 돕기 위해 한국인이 세운 의료기관인 헤브론 의료원에서 2018년 심장 수술과 뇌수술을 받았으며, 심장 질환 등과 관련해 추가로 수술이 필요한 상태로 전해졌다.

이영돈 헤브론 병원장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의 방문으로 로타의 사연과 관련한 언론 보도가 나가면서 로타를 한국으로 이송해 치료 받을 수 있도록 후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거나 치료 중 한국 치료를 돕겠다는 등의 연락이 헤브론 의료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 여사는 대선기간 높은 언론 노출과 대비되는 소극적인 영부인 행보로 이른바 '조용한 내조'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국내에서도 대부분 비공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최근엔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의 방한 때 대통령 관저 환대 자리에서도 조용히 내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최대한 공식일정을 자제하는 조용한 내조의 김건희 여사와 상반되게 적극적으로 영부인 역할을 수행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정숙 여사의 행보와 비교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 김정숙 여사 나홀로 순방…적극적인 퍼스트레이디 VS 관광지 방문 중심

김정숙 여사는 문 전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대부분 동행한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영부인 역할을 수행했지만 돌발 행동으로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과거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 김정숙 여사가 필리핀 순방 때 말춤을 춘 것을 두고 "서민들의 살기가 더욱 팍팍해져 가는 마당에 말춤이나 추면서 축제를 즐기는 저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한숨 나오는 연말을 보내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2019년 9월 라오스 방문 당시 공항 환송식에선 문 전 대통령보다 서너걸음 앞서면서 의전 결례 비판도 받았다.

아울러 김 여사는 지난 2018년 7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인도 순방 후 4개월 뒤인 11월 5일부터 3박 4일간 인도를 단독으로 재방문했는데 이 과정에서 대표 관광지인 타지마할 방문과 대통령 전용기 사용 논란을 빚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영부인 단독으로 대통령 휘장을 달고 전용기를 탄 전례는 없다"면서 "인도 일정은 모디 총리를 면담한 것 외에는 대부분 유명 관광지로 채워졌다. 김정숙 여사가 '다시 오면 타지마할에 꼭 가겠다'고 했던 개인적 소망도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또 2019년 6월 노르웨이 순방 당시 세계적 절경인 피오르와 유명 기념관인 '그리그의 집', 미술관 등을 방문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당시 청와대는 "주최 측과 조율된 일정"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이번 김건희 여사의 심장병 환아 방문을 놓고 여야 공방이 펼쳐졌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남양주시병)은 김건희 여사가 현지 병원 등을 방문한 것에 대해 "따라 하고 싶으면 옷차림이나 포즈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과 희생을 따라하라"고 비판했다.

장경태 의원은(서울 동대문구을) "홍보 수단이 된 환아와 가족의 인권, 빈곤국으로 낙인 찍힌 캄보디아에 대한 외교 결례, 오드리 헵번 코스프레로 세계적인 조롱거리로 실추된 국격"이라고 직격했다.

이에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포항북)은 "아픈 사람을 돌보는 모습을 보이는 게 대한민국의 국격을 올리는 일이라고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생각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기현 의원(울산 남구을)도 "세계 최고의 관광지를 쏘다닌 '관광객 영부인'보다 오드리 헵번처럼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며 봉사활동을 하는 '선행 영부인'이 백배 천배 더 좋다"라고 비꼬았다.

김건희 여사가 14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교민 자녀와 학생, 청년 등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 문화를 전파하고 있는 한국학교를 방문, 꽃다발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 영부인·해외 영부인은 어땠나

역대 영부인들의 행보를 보면 대체로 조용한 내조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배우자였던 이희호 여사는 지난 2002년 5월 뉴욕에서 열렸던 유엔 아동특별총회에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해서 기조연설까지 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과는 정치적 동지라고 까지 일컬어질 만큼 보좌했고, 이희호 여사 스스로도 여성인권 신장운동 등에 앞장서면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길 정도로 적극적 행보를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배우자였던 권양숙 여사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윤옥 여사는 대체로 적극적인 대외 활동보다는 조용한 내조에 충실한 행보를 보였다.

다른 선진국들의 퍼스트레이디 사례를 보면 독자적으로 해외 순방을 나서며 영향력을 과시한 경우가 많았다.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 영부인 시절부터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며 정치적 영향력을 키웠다. 이후 정권에서는 국무장관까지 지냈고 대선까지 도전했다.

미셸 오바마도 나홀로 순방을 자주 다녔다. 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배우자인 질 바이든 여사도 대외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고 특히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는 것을 영부인이 된 이후에도 병행하고 있다.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이 불참한 도쿄올림픽 개회식 단독 참석을 비롯해 지난 5월 동유럽을 방문해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탈출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만나기도 했다.

독일의 경우 여성이었던 메르켈 전 총리의 부군인 울리히 메르켈이 퍼스트 젠틀맨 역할을 하기도 했다. 다만 16년간 재임한 최장수 총리의 배우자였음에도 1년에 한 번 오페라 축제에 메르켈 전 총리와 함께 참석하는 것을 제외하면 대외행보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번 김건희 여사 순방 관련 보도를 접한 대구에 거주하는 시민 A씨는 "사진이 약간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보여주기식 아니냐는 논란이 생길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어려운 사연을 가진 아픈 아동을 방문한 취지 자체는 좋다고 생각 한다"고 평가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매일신문과 통화에서 김건희 여사 행보에 대해 "국민 시각에서 볼 때 취임 초 보다는 김건희 여사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며 "영부인 역할을 정립하는 과정 중에 예상보다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예민함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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