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여상 학생 14명 "어르신에 받은 '인생 자양분' 책으로 냈어요"

올해 1월 인터뷰집 ‘사랑, 삶, 그리고 기억들’ 300부 발간
인성교육 고민에서 출발, 남구청 적극 협조에 어르신 인터뷰
어르신 삶 이야기 통해 교훈 얻어 "뭐든지 주저않고 해볼 것"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 14명이 남구 지역 어르신 10명을 직접 만나 인생 스토리와 사랑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집을 펴냈다. 사진은 인터뷰에 참여한 대표 학생들. 왼쪽부터 한명주(18·금융과) 학생, 이세림(18·금융과) 학생, 박솔미(18·금융과), 전귀정(18·금융과) 학생. 배주현 기자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 14명이 남구 지역 어르신 10명을 직접 만나 인생 스토리와 사랑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집을 펴냈다. 사진은 인터뷰에 참여한 대표 학생들. 왼쪽부터 한명주(18·금융과) 학생, 이세림(18·금융과) 학생, 박솔미(18·금융과), 전귀정(18·금융과) 학생. 배주현 기자
인터뷰집
인터뷰집 '사랑, 삶, 그리고 기억들'.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 제공

"친할머니 집에 가면 나는 특유의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 세상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단하고 멋있게 보여요."

지난 16일 대구 남구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이하 대구여상) 대강당에서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 네 명을 만났다. 이들은 "저희가 만들었어요"라며 분홍색 책 한 권을 들어 보이며 까르르 웃었다. 책 제목은 '사랑, 삶, 그리고 기억들'. 대구여상 학생 14명이 남구 지역 어르신 10명을 직접 만나 인생 스토리와 사랑,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집이다.

학생들은 학교 측의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한 일이 출간까지 이어지게 될 줄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인터뷰부터 내용 정리, 편집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마음만은 뿌듯했다. 지역 어르신과 첫 만남에서 풍부한 인생 교훈을 얻을 진 꿈에도 몰랐다.

올해 1월 대구여상 학생들이 지역 어르신의 인생 이야기를 담아 만든 책이 나왔다. 어르신과의 만남은 아이들에게 단순 인터뷰 활동을 넘어 본인 삶에 대해 반성하고 올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계기로 다가왔다.

◆인성교육 고민에서 출발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좋은 인성을 길러줄까….'

책 출간은 학교의 인성교육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학교에서의 인성교육이 강조되는 가운데 강사를 초청해 인성 강의를 듣는 단순한 교육에 그치고 싶지 않았다. 대구여상은 특성화 고등학교로 대학 진학보다 취업에 교육목표가 있는 만큼 기업체 인사담당자들은 늘 '인성 좋은 학생'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선생님들은 학교 안에서 학교 밖으로 눈을 돌렸다. 인성은 '삶'과 절대 분리될 수 없는 아주 밀접한 주제라는 생각이었다.

권순창 교감은 "아이들에게 늘 인성 교육을 한다. 인성은 말 한마디 안 해도 드러나는 것이다. 힘든 사람을 돕고, 솔선수범해 쓰레기를 줍고…. 이런 말들을 매일 했지만 '선생님의 말'이다보니 아이들이 와닿기엔 한계가 있었다"며 "많은 시간을 살아갈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 고민을 했다. 결국 학생들보다 몇 배로 산 어르신의 삶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게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학교의 협조 요청에 남구청이 즉각 화답했다. 남구청은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대구여상의 학생 인성교육에 뜻을 같이해 지역의 여러 어르신을 학생들과 연계했다. 어르신들의 인생이야기 인터뷰뿐만 아니라 영상촬영 및 출판기념회도 적극 지원했다.

그렇게 14명의 학생과 지역 어르신 10명이 만났다. 기부 인생을 살아오신 분, 전쟁미망인, 참전용사, 장애인 자식을 둔 어르신 등…. 아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한 달간 다양한 삶을 살아온 어르신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직접 인터뷰 질문지도 구상하고, 사진도 스스로 찍었다.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 14명이 남구 지역 어르신 10명을 직접 만나 인생 스토리와 사랑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집을 펴냈다. 사진은 17일 진행된 출판기념회 사진. 남구청 제공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 14명이 남구 지역 어르신 10명을 직접 만나 인생 스토리와 사랑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집을 펴냈다. 사진은 17일 진행된 출판기념회 사진. 남구청 제공

◆어르신의 뜻깊은 조언 '자양분'으로

인터뷰는 녹록치 않았지만 뜻깊은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어르신을 만나러 가기 전 두려움이 컸다고 했다. 평소 가족 이외 어르신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잘 없었기에 아이들 눈에 비친 어르신들의 모습은 다소 무서웠다. 하지만 자신들을 친손주처럼 반겨주는 모습에 '연륜의 무게'를 실감했다.

박솔미(18·금융과) 학생은 "평소 아파트에 같이 사는 이웃 어르신에게 가벼운 인사만 해봤기에 어르신들이 낯설었다.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였기에 어색함이 덜했다"며 "반면 할머니는 홀로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하기에 많이 어색해하시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낯선 사람에게 엄청 편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멋있었다"고 말했다.

삶에 아픔이 가득한 어르신들에겐 혹여나 질문이 실례가 되지 않을까 고민도 많이 했다. 난감한 순간도 여럿이었다. 질문은 산더미인데 이야기가 자꾸 산으로 가는 탓에 하고 싶은 질문을 다 하지 못하고 나와야 하는 웃픈 상황도 생겼다. 그 또한 학생들에겐 경험이었다.

이세림(18·금융과) 학생은 "물어보고 싶은 건 많았는데 이야기가 계속 커지고 산으로 가다보니 결국 시간이 없어 묻지 못하고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과거에 어떻게 학교에 다녔는지가 궁금했는데 어르신은 아들, 손주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셨다"며 "자녀에 대한 사랑이 정말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할머니의 모습에 우리 부모님, 조부모님의 사랑도 저렇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어르신들의 조언은 삶의 배움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대화를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삶의 노하우를 배우면서 자신의 것으로 금세 습득했다.

이어 솔미 학생은 "생일에는 케이크와 불고기를 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만난 어르신이 따뜻한 국수를 먹으면 오래 산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신기했다"며 "그래서 최근 생일엔 케이크 대신 국수를 먹었다. 어르신들의 진짜 삶의 조언을 늦지 않게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웃었다.

네 명의 아이에게 "해당 경험을 통해 반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입을 맞춘 것도 아닌데 똑같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도전해라"고 답했다.

전귀정(18·금융과) 학생은 "후회 없이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르신들은 우리보다 더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최선을 다해 살았고 지금도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적극 나서고 있었다"며 "어떤 일이든 자양분이 되니, 기회가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한명주(18·금융과) 학생도 "어르신들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데 젊은 애들이 귀찮다며 쉽게 나서지 않는 모습이 부끄러웠다"며 "귀찮더라도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모두 300부가 발행된 '사랑, 삶, 그리고 기억들' 책은 지역 도서관과 학교, 공공기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17일 대구여상의 출판기념회를 마무리로 4개월간 출간 대장정은 마무리된다.

송시한 교장은 "앞으로도 선생님들과 함께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인성교육을 체험할 방법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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