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사람이 구사하는 언어는 그 사람을 보여준다. 사진: pixabay
언어는 그 사람이다. 누군가를 알고 싶을 때 나는 그의 언어를 관찰한다.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세계를 뛰어넘는 언어를 구사할 수 없다. 초등학생이 '당신과 조우하게 되어 내 인생의 영광입니다'라는 문장을 구사할 수 없다. 여든 살 할아버지가 화나는 일이 있을 때 '킹받네'라고 말하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언어는 자신의 세계이자 한계이다. 심지어 언어에는 냄새까지 있다. 누군가는 향기로운 언어를 구사하고 누군가의 언어는 악취가 풍긴다.
나는 언어의 냄새를 맡으며 그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지인과의 대화뿐 아니라 낯선이 와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평생 단 한 번밖에 올 일이 없을 법한 타지의 작은 음식점 아르바이트생의 언어라든지 택시 운전기사님의 언어도 그러하다. 언어를 느끼면 그 사람을 느끼게 된다.
언어를 통해 승자와 패자를 나누어 보았다. '겨우 말 습관 하나로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니 너무 이분법적인 거 아니요!'라는 말이 귀에 꽂힌다. 하지만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아무리 미국이 금리를 올려도 천냥은 여전히 큰 돈일 것이다. 겨우 문장 하나로 천냥의 빚을 갚을 수 있다면 배워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그럼 먼저 승자의 언어를 찾아보자.
<승자의 언어: 실례합니다.>
승자는 '실례합니다'라고 말한다. 고작 '실례합니다'가 아니라 무려 '실례합니다'이다. 내가 경험한 첫 외국은 스물여섯 살에 밟은 미국땅이었다. 시차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7시 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그토록 오고 싶었던 미국에 온 걸 실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교환학생 신분으로 미국 대학에 가게 되었다. 미국 도착 다음날부터 캠퍼스를 만끽하고자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EXCUSE'를 받았다.
'왜 자꾸 자기를 용서하라고 하지?'
'몸이 부딪힌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실례한다고 하지?'
미국 친구들은 내 앞을 가로질러갈 때도 '익스큐즈미'를 남발했다. 심지어 나와 신체 접촉이 전혀 있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한국에서는 몸이 부딪히고 심지어 뒷사람이 내 신발의 뒤꿈치를 밟아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겨우 나를 앞질러 간다는 것만으로 실례한다는 말을 하니 정말 의아했다.
그럼 일본의 경우를 보자. 일본 사람들은 사람을 앞질러 갈 때 어떤 말을 할까? 바로 '스미마셍'이다. '죄송합니다'라는 뜻이다. 앞질러가는 것이 왜 그렇게 미안할까? 미국이 영어를 쓰고 일본은 일본어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언어를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승자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EXCUSE ME'와 '스미마셍'이라는 문장을 한번 째려보라. 저 두 문장은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바로 언어의 중심이 내가 아닌 상대에게 있다는 것이다. '나를 용서하세요' '제가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듯 하지만 사실 저 문장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상대이다. 내가 중심이라면 미안할 필요도 용서를 구할 이유도 없다. 혹시 나의 행동이 당신의 기분을 해쳤다면 죄송하다는 뜻이다. 완전히 중심이 상대에게 있는 것이다.
<패자의 언어: 지나갈게요.>
지하철을 탈 때면 들려오는 말이다. 내가 듣던 누군가가 듣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어디에선가 늘 들려오는 말이다. 특히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언어이기도 하다. 타기만 하면 내 몸이 내 것인지 너의 것인지 의심되는 곳인데 '내가 빨리 가야 하는데 왜 내 길을 막고 있어?'라는 뜻이다. 당연히 이 문장의 중심은 자기 자신이다. 'EXUSE ME'와는 정반대에 있는 언어이다.
하지만 이 말조차 배려의 언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비켜주세요라고 말하기는 그러니 지나갈게요라고 부드럽게 말한 것 아닙니까?'라고 생각한다. '지나갈게요'나 '비켜주세요' 모두 자기중심적인 말이다. '내가 가야 합니다. 내 길을 비켜주세요'라는 뜻이다. 절대 승자의 언어가 될 수 없다.
'잠시만요' 역시 마찬가지이다. 길을 지나가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잠시 봐달라는 언어이기도 하다. 그렇게 패자는 시간을 멈추는 초능력이 있다. 잠시 앞사람들을 멈추게 하고 자신은 유유히 그 길을 지나간다.
언어 하나로 승자와 패자를 나눈다고 불 멘 소리 하지 말자. 언어는 곧 그 사람이다. 그 사람의 세계관이고 그 사람이 삶을 대하는 태도이다. 2023년이 밝았다. 올해는 당신의 언어 습관을 바꿔보면 어떨까? 자기중심적인 언어가 아닌 상대를 배려하는 언어를 구사해 보면 어떨까? 그 언어가 아카시아 같은 향기를 내뿜어 사람들이 당신 곁에 모이게 할 것이다.

'어떻게 광고해야 팔리나요'의 저자(주)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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