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건강플러스] 마약…"한 번만 손대도 쾌락·보상 중추 망가져"

박승현 대동병원 부원장 인터뷰 "필로폰 등 한 번 사용으로도 무조건 중증으로 악화"
최근 우울증 환자 급증…안정감 느끼게 하는 펜타닐 확산 우려스러워
일대일 면담, 약물 사용자 그룹 면담 등 가능한 모든 치료 필요

마약. 클립아트코리아 이미지
마약. 클립아트코리아 이미지

최근 SNS, 다크웹 등 음지를 통한 마약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우리나라도 더는 마약 청정국이 아니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연예계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마약과 관련한 소식으로 떠들썩하다. 마약은 끊기가 어려운 만큼 재범률 또한 높기 때문에 중독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올해 개원 30주년을 맞은 대동병원은 지역에서 마약환자를 가장 많이 진료하는 병원으로 꼽힌다. 2013년부터 마약 환자들을 대상으로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현재는 지역 교도소 내 재소자를 대상으로 약물 중독 진료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마약류 실태조사 참여기관으로 활동하는 등 국가사업도 활발히 진행하며, 최근에는 대구시에 치료보호기관 지정 신청을 했다.

박승현 대동병원 부원장
박승현 대동병원 부원장

◆마약, 딱 한 번도 절대 안 돼

박승현 대동병원 부원장은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마약은 단 한 번으로도 쾌락과 관련된 중추를 망가뜨리기 때문에 절대로 손을 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 부원장은 "마약 가운데 기분을 고양시키는 업(up)계열에 속한 코카인, 필로폰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의 수십 배에 달하는 쾌락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도파민과 연계된 쾌락·보상과 관련된 중추를 망가뜨려 자연적인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며 "이런 마약을 한번 경험하면 다른 어떤 것도 시시해지기 때문에 약을 또 찾게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필로폰과 같은 마약은 한 번만 사용해도 환청을 듣게 되는 등 무조건 중증으로 악화한다고 경고했다. 박 부원장은 "마약 중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다운(down)계열인 헤로인을 비롯해 최근 문제로 대두된 펜타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데, 약 기운이 떨어지면 사람을 고통스럽고 불행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마약 환자 구성 변화

그동안 국내 마약 종류의 대부분은 필로폰이 차지했었다. 또한 마약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보통 40대 중반 이상에 조직 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 많았다. 과거에는 폭력 조직 등을 거치지 않고는 마약을 손에 얻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유통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평범해 보이는 대학생이 마약에 빠지기도 하며, 다른 시·도에서는 중학생도 마약으로 입원을 하기 시작한 실정이다. 박 부원장은 "대구는 아직 다른 도시와 비교하면 마약 범죄에 있어서는 환자 연령대나 마약류 종류의 변화가 느린 편"이라고 말했다.

◆펜타닐 확산 우려스러워

최근 미국은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통증 완화 효과가 있는 호르몬인 엔돌핀은 행복하거나 다쳤을 때 나오는데, 펜타닐을 사용하면 자연적으로 나오는 엔돌핀의 수십~수백 배에 달하는 양이 한꺼번에 나올 정도로 소량으로도 효과가 강력하다.

박 부원장은 최근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펜타닐이 확산하기 쉬운 환경이 됐다고 우려했다. 그는 "고속성장을 이룬 산업화 시대에는 각성 효과가 있는 필로폰, 코카인 등을 많이 찾았다면, 이제는 아무것도 안 해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펜타닐을 구하려는 이들이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약 중독 치료의 과정
과거 마약 사용자였다가 현재 중단한 상태라면 마약 사용에 따른 후유증(불안감, 불면, 우울, 환청 등)에 대해 외래 치료를 실시한다. 최근 사용한 이력이 있다면 입원을 한 뒤 사용이 불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후에는 일대일 면담, 약물 사용자 그룹 면담, 자조모임 등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해야 한다.

연구에 따르면 적어도 마약을 5년간 중단했다면 사망률·재발률이 많이 줄어들며 거의 완치됐다고 판단할 수 있다. 박 부원장은 "중요한 것은 재발은 병의 증상이지만 그럴 때 치료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는 본인의 의지 문제이다"며 "그러니 단약에 실패했더라도 5년을 중단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꺾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건반사제어법. 대동병원 제공
조건반사제어법. 대동병원 제공

◆조건반사제어법(CRCT)

대동병원에서 중독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조건반사제어법'이다. 이는 일본 국립 시모사 정신의료센터 정신과 의사 히라이 신지가 2006년에 고안한 새로운 중독 치료법이다. 일본에서는 마약, 알코올 중독이나 성적 문제, 도박, 도벽, 식이장애 등 행위 중독 전반에 대한 치료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조건반사제어법은 치료의 표적이 되는 행동의 작동을 멈추는 제어자극을 만들어, 그 행동을 촉진하는 반사 연쇄의 작동성을 약하게 하는 원리다. ①제어 자극(Key Word Action 설정) ②유사(simulation) ③상상(recollection) ④유지(maintenance) 등 모두 1~4단계로 진행한다.

1단계는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더라도 이를 제어하는 '주문'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 마약을 할 수 없다. 괜찮다"라는 주문을 특정 손짓과 더불어 20분간 간격을 두고 하루 20차례 반복한다.

2단계 '유사'의 목적은 치료에서 문제가 되는 행동을 관장하는 반사 연쇄의 작동성을 약하게 하는 것이다. 하루 20회, 누적 200회를 반복하면서 괴로웠던 체험을 적게 한다. 이를 반복하면서 당시를 상기하는 작문을 하면 환자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해 자극에 대한 반응이 서서히 줄어든다.

3단계 '상상'은 유사 단계와 마찬가지로 반사를 자극해 재현시키고, 반사의 작동성을 저하시키는 것이다. 환자에게 눈을 감고 문제 행동 당시의 시간별로 자신의 동작, 주위 광경, 다른 사람과의 관계 등을 상세히 떠올리게 한다. 상상 단계를 하루 수십 차례 반복하면 환자는 과거 문제 행동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다.

4단계 '유지'의 목적은 앞의 단계까지 성립된 제어 자극과 작동성이 줄어든 행동을 관장하는 반사 연쇄를 유지하고 안정화시키는 데 있다. 환자들은 3개월간 1~3단계 과정을 마친 뒤 퇴원 후에도 1, 2주에 한 번씩 외래 방문을 통해 유지 단계를 점검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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