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하나 완성하는 데 몇 날 며칠이 걸릴 수 있다. 하물며 온전한 책 한 권을 펴내는 일에는 상상 이상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고통이 따를 것이다. 그런데도 이 세상이 수많은 책과 작가들로 가득 차있는 이유는, 자신의 삶 일부를 캐내 정제하는 과정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값진 보석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생에서 가장 밀도 있는 시기를 겪고 있는 학생들이 책을 쓰면서 얻은 보석은, 그 무엇보다 빛날 것이다.
대구 지역 학생과 선생님들이 직접 쓴 54권의 책이 최근 정식 발간됐다.
대구시교육청은 2009년 이후 매년 책쓰기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교원 저자 양성 및 출판을 돕고 있는데, 2023년 현재까지 450권을 출판했다. 올해는 학생 저자가 쓴 책 49권, 교원 저자가 쓴 책 5권 등 총 54권이 출판됐다.
매년 10월에서 12월까지 두 달에 걸쳐 우수작품 공모를 진행하고, 선정된 학교와 교원을 대상으로 다음 해 2월까지 컨설팅을 제공해 좋은 책이 출판되도록 지원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2022 대구 올해의 책'에 유가중 학생 저자의 '감성21'이 선정되기도 했다.

시교육청은 지난달 24일 오후 2시 시교육청 행복관에서 학생·교원 저자, 학교·출판 관계자, 학부모 500명과 함께하는 '2023. 학생·교원 저자 출판기념회'를 개최했다.
이날 기념회는 지난해 출판 지원 도서 기부자와 이번 년도 학생·교원 저자 및 관계자 5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다. 식전 행사로 2022년 출판 지원을 받은 학생·교원 저자들의 기부금 전달식이 이뤄졌다.
지난해 41권의 학생·교원 저자 도서가 출판 지원을 받았는데, 저자들은 한 해 동안 판매된 도서 수익금(인세) 전액 719만387원을 대구미래인재육성재단에 기부했다. 이는 책쓰기 교육의 결실이 '독서인문교육(글쓰기)-출판지원-기부'로 이어지는 교육의 선순환 구조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날 행사에서 학생 저자인 경명여고 1학년 김주경 학생은 "글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책을 쓰고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라며 "저마다 주제를 정하고 글을 써내려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배운 게 참 많았다. 또한, 책의 인세가 좋은 일에 사용돼 더욱 뿌듯하다"고 했다.
학생·학부모 공동 저자인 반송초의 신은주 학부모는 "지난해 우리 별빛 반 친구들은 프로젝트 수업을 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로 표현하는 꼬마 시인들로 성장했다"며 "이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고마움, 대견함, 뿌듯함 등 부모로서 참 풍요로운 행복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출판의 기회를 만들어준 시교육청과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시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올해 출간된 책 54권 중 세 가지를 소개해본다.

◆대구서재초 '지금 우리가 할게요'
달성군 다사읍에 있는 대구서재초의 책쓰기 동아리 '작가의 서재'는 어느덧 3기를 맞았다. 코로나19가 발생했던 시기에 시작된 '작가의 서재'는 코로나19로 얼룩진 학교와 세상을 안타까워하며 희망을 노래한 시집으로 두 권의 책을 출판했다.
이번에는 세상을 향한 좀 더 넓은 눈을 가져보기로 했다. 바로 지구를 위한 발걸음, 유네스코가 강조하는 세계시민교육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가 당면한 문제 상황을 생각해보고 고민을 나누며 실천을 다짐하는 창작활동을 펼쳤다. 평화의 시대에 갑자기 일어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상기후, 가뭄 등 지구온난화로 촉발된 기후위기, 날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비극적인 학교폭력,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에 대한 사랑까지, 우리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이 시가 된다는 생각으로 일상을 감동으로 바꾸는 인문학 연금술을 실천했다.
심후섭 대구문인협회 회장은 "아이들의 눈으로 전쟁을 보고 세계 대혼란 상황에서 평화와 희망을 노래하는 노력이 아름답다"며 책에 추천사를 남기기도 했다.
책을 엮은 김민중 서재초 교사는 "어느덧 세 번째 책을 출판하게 됐는데, 조금이라도 타성에 젖지 않고 작가의 책임을 다하도록 마음을 다잡았다"며 "세계시민정신으로 인류 공동의 가치를 위해 노력한 학생작가들이 대견하며 자랑스럽다"고 했다.
◆왕선중 '소설로 만나는 중딩들의 세계'
달성군 다사읍에 있는 왕선중은 국어, 수학, 영어, 과학 과목에서 총 26개의 주제 선택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은정 교사는 '초단편소설쓰기'반을 개설해 8주 간의 소설 쓰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최종적으로 작품을 완성한 13명의 작품을 책으로 엮었다.
"중학생에게는 소설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 교사는 몇 년간 학생들과 글쓰기 수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소설을 쓰는 일이 학생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들이 가진 역량을 몇 단계를 뛰어넘어 향상시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중학생들이 자신의 세계를 온전히 펼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확보돼야 한다는 생각이 자유학기제 주제선택 '초단편소설쓰기'반으로 이어진 것이다.
학생저자들은 "제가 쓴 활자 하나하나가 이야기가 돼 세상에 나간다 하니 설레고 마음이 벅차다" "소설을 쓰면서 주인공에 몰입하게 돼 '양동근'이라는 캐릭터의 삶을 살아본 것만 같은 색다른 경험이 됐다", "소설을 써보니 마치 책이라는 작은 공간에 나만의 세계를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활동을 통해 인생의 또다른 재미있는 선택지를 맛 본 느낌이다" 등의 다채로운 소감을 전했다.
◆이상철(칠성고 수석교사) 외 9인 '공부를 읽고 쓰다'
이 책은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질문,'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진짜 공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공동 저자인 독서인문교육 전문가 10인(이금희, 최순나, 김묘연, 이인희, 박정미, 이상철, 임정미, 박미진, 이주양, 박홍진)이 학교에서 읽고 쓰고 말하는 공부를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구교육연수원 '한 학기 한 권 읽기'연수에서 만난 10명의 교사들은 '최재천의 공부', '원래 책 안 읽는 아이'를 읽고 자신의 공부 과정, 질문과 탐구의 과정을 '공부를 읽고 쓰다'에 담았다.
10인의 저자들은 "쓰고, 말하고, 읽는 공부가 반복되면서 학생들의 말문과 글문이 터진다"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줄 알게 되면서 학생들은 '자신만의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주체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AI 시대의 인문교육, 독서교육이 추구하는 방향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며 이 책을 읽는 또다른 교사들이 자신만의 수업과 교육 이야기를 글로 써주기를 희망했다.
◆학생과 교원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계속된다
올해도 시교육청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필요로서의 독서'가 아닌 '읽고 싶다'는 '즐거움의 독서'가 될 수 있도록 수품책(수업 품은 책읽기)활동을 펼친다. 수품책 활동비를 한 학교당 300만원씩 지원하고, 수품책 활동 교원 연구회 40팀을 운영해 교과 수업 속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활동이 일상이 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
또한, 토론을 통해 독서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도록 독서인문 동아리 운영비를 초등학교에 172만원, 중·고등학교에 215만원을 지원한다. 학생 독서토론 동아리 40팀, 교직원 독서토론 동아리 50팀을 선정해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독서문화를 조성한다.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2022 교육과정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학습자 주도성"이라며 "책쓰기야말로 학습자의 주도성을 키울 수 있는 최고의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청은 이를 위해 꾸준히 체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출판지원 도서는 지난 달 말부터 온·오프라인 서점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출판지원 도서 안내 목록집과 포스터는 이번 달 개학과 함께 학교, 직속기관 및 공공 도서관에 배부됐다. 출판지원 도서 홍보 영상도 시교육청 유튜브 채널에서 오는 5월까지 탑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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