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4인4쌤의 리얼스쿨] 당신의 자녀는 '학습부진아'입니다… 사실을 사실로 알리는 일

학부모에게 '학습지원대상학생' 사실 알리기 조심스러운 교사들
민감한 사실을 공손히 전한다는 것… 교육 대상인 학생에게도 조심, 또 조심
학습지원대상학생들은 정책으로 시행되는 수업에 대상일 뿐… 발전 기회로 삼아야

학교의 '리얼'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대구 초·중·고 교사 4인이 뭉쳤다! [4인4쌤의 리얼스쿨]은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 있으며 떠오른 생각의 조각들을 글로 엮은 코너입니다. 학교 현장의 시시콜콜하면서도 솔직한, 의아하면서도 훈훈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대구 시내 모든 중학교는 지금 '학습지원대상학생'을 어떻게 지원해줄 것인가 고민에 빠져있다. 학습지원대상이란 3월 초 진단평가에서 기준점을 넘지 못한 학생들이다. 이전에는 '기초기본반'이라 불렸고, 그전엔 '부진반'이라고 불렸던 학생들의 모임이 이제 구성될 것이다.

나라에서는 기초학력을 튼튼히 한다는 취지로 많은 예산을 투입해 수업도 개설하고 강사도 붙여준다. 대구시교육청도 예외는 아니고, 교육감의 공약 사항 중에도 '다품교육'이 있을 정도로 한 아이를 부족함을 채워 올곧게 키우는 것에 대한 논의는 정책으로 착착 시행되고 있다.

◆학부모에게 자녀의 '부진'을 알린다는 것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잘 알겠지만, 학교에서는 2년 전부터 '채움'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수업 하나당 4~5명의 학생들만 들으니 선생님과 심도 있는 수업이 가능하고 교재비와 간식도 제공된다. 기초 학력이 부족한 학생만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학생들도 신청할 수 있고, 교과 담당 선생님이 직접 개설하다 보니 학부모들의 문의와 신청이 끊이지 않는 수업이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그 수업이 기본 취지로 돌아가서, 학습이 부진한 학생을 위주로 편성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건 당연히 좋은 일인데, 학부모님께 '학습지원대상학생'임을 반드시 고지해야 한다는 점이 알려지자 교무실은 술렁였다.

민감한 사실을 전달할 때 매체의 역할은 꽤 중요하다. 이 사업을 담당한 한 부장 선생님은 간곡히 부탁하셨다. '댁의 자녀가 대상자입니다'라는 사실을 종이로 전할 경우 학부모가 받을 심리적 타격은 엄청나므로, 담임교사가 전화를 통해 공손히 이 사실을 전해줄 것을. 하지만 어떻게 이를 공손히 전할지, 담임교사들은 여전히 난감하다.

사실 학부모 입장에서는 그 누구도 내 자녀가 기초학력이 부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다. 게다가 남아서 수업을 한다니, '나머지 수업'이라는 망령은 꽤 오랜 세월동안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아 많은 상상을 불러온다. 낙인이 찍히지 않을까, 놀리지 않을까,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기분 상하지 않게 다양한 방법 동원하는 교사들

우리 교사들은 수업 대상임을 통보하는 역할도 하지만, 수업 담당자로서 개설을 맡아야 하는 사명도 갖고 있다. 학부모의 경우 성인 대 성인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면 되지만, 교육 대상인 학생에겐 학생의 수준에 맞게끔 메시지를 변환해서 전달해야 한다.

중학교에서는 학생과 교사가 서로 기분이 나쁘지 않게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운명론자(너는 나의 운명이야)나 수업예찬자(너와 함께 수업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야)와 같은 재치 있게, 여유 있게 수업 대상임을 알리는 교사들이 있는가 하면, 수업 이름을 재밌게 짓는 교사도 있고, 풍성한 간식으로 유인하는 교사도 있다.

1학년이나 2학년 학생들은 심리적인 타격이 조금 있으나 3학년들은 이미 운명을 예감하고 미리 수업을 신청하고 가기도 한다. 간혹 본인이 대상 학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의아해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러한 학생들을 보며 교사는 기특함에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학습지원이 필요하다는 걸 객관적으로 인정해야

이 글을 쓰는 나도 초등학생 자녀가 기초·기본반 수업을 받아본 적이 있다.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선생님은 얼마나 아련하게 '우리 애'를 바라볼까 걱정이 됐었다. 하지만 막상 수업이 진행되니 아이가 굉장히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놓은 적이 있다. 전달하시는 선생님이 매우 조심하시는 것도 느껴졌다.

학습지원대상학생들은 사실 과소평가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과대평가할 대상도 아니다. 다만 점수가 모자랐을 뿐이고, 정책으로 시행되는 수업에 대상일 뿐이다. 객관적으로 실력이 모자라서 선정된 것이라면, 과감하게 현실을 인정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냥 받아들이라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학교에서 통보하는 그 '사실'에 마음이 흔들리면 현실 인식이 흔들린다. 인식이 흔들리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결과적으로 자녀에게 그 영향이 간다.

이 마음가짐은 학교에서는 교사이지만 집에 가면 학부모인 분들에게도 필요하다. 직업적으로 기준점이 높다 보니 학교 학생들에게는 여유롭지만, 자녀에게 강압적으로 대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 교사를 부모로 둔 자녀는 오히려 피곤함을 겪을 수 있다.

사실 공부와 관계없이 아이들은 해맑다. 운명론자 선생님께 운명이 돼주고, 수업예찬론자 선생님의 수업을 예찬하며 엄지척을 날린다. 간식도 공손히 받아 가고, 때로는 성적이 올랐다며 감사해하며 돌아간다. 아이들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자신의 실제 모습을 알고 부끄럼 없이 표현하기에 발전 가능성이 더 높다.

새 학기 시작하며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이 없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그 불안함을 좀 더 단단한 확신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멀리 보고 함께 보는 여유에 있을 것이다.

교실전달자(중학교 교사, 연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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