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신부가 단상 앞에 나란히 섰다. 새 출발을 앞둔 두 사람의 얼굴이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찼다. 그때 강아지 한 마리가 버진로드를 따라 뒤뚱뒤뚱 걷는다. 강아지의 몸에는 반지를 담은 주머니가 대롱대롱 달렸다.
바야흐로 결혼의 계절이다. 주말마다 결혼식장은 예약이 꽉꽉 찼고 1시간 단위로 하루 종일 예식이 진행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칫하다 내 결혼식에 다음 결혼식을 보러 온 하객이 앉아 있을 판이다. 그 가운데 나만의 예식을 올린 부부가 있다. 김영식(가명) 씨와 이은수(가명) 씨는 얼마전 애견 동반 결혼식을 치뤘다.
◆화동? 우리는 반려견과 함께하는 화견!
"결혼식을 준비하던 와중 반려견 감자를 화동으로 해보면 어떻겠냐는 주변의 추천이 있었어요. 그 말을 듣고 솔깃하더라고요" 사실 화동 후보는 따로 있었다. 바로 신랑 영식 씨의 5살 조카다. "하지만 조카가 겁이 많고 잘 울어서 화동을 턱하니 맡기기가 걱정되더라고요" 치열한 경쟁 끝에 결국 감자가 화동에 낙점됐다. 무려 사람 라이벌을 제친 것이다. 실제로 5살 조카는 결혼식 당일 울음을 터뜨렸다.
강아지 화동을 선택하고 나니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다. 우선 결혼식장 구하기부터 쉽지 않았다. 반려동물 동반이나 강아지 화동을 허락해 주는 식장이 별로 없었다. 특히 실내에서 이뤄지는 식장의 경우에는 더욱 심했다.
실제 대구에는 애견 동반 예식을 하는 결혼식장이 없다. 대구의 한 웨딩업계 관계자는 "하객 중에 강아지 털 알레르기가 있으면 곤란해지기도 하고, 강아지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 불안해하거나 제어가 안될 수 있어 애견동반 결혼식은 부담이 커요. 종종 문의가 들어와도 원활한 예식 진행을 위해 대부분 거절하는 편이죠. 하지만 간혹 여건이 될 때는 진행하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영식 씨와 은수 씨는 운이 좋았다. "식장이 구해지지 않아 상심하고 있던 와중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날 예식이 저희 밖에 없어서 애견동반 예식이 가능할 것 같다는 경산의 한 결혼식장의 연락을 받았어요" 물론 반려동물은 이동장이나 유모차에 넣어둬야 한다는 주의사항이 덧붙었다. 하객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의상 준비·입장 연습…쉽지 않은 화견
결혼식장을 정하고 나니 감자 의상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 신부 드레스보다 더 고민해서 고른 것이 감자 의상이다. 대부분 강아지 화동은 웨딩드레스를 입히거나 스카프로 멋을 낸 착장을 많이 한다. 하지만 중성화를 했다지만 엄연한 수컷 감자에게 드레스를 입힐 수는 없었다.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국내에는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 고가의 금액을 주고 해외 배송으로 정장을 구매했다. "하지만 배송을 받고 며칠후 똑같은 옷이 국내에 더 싸게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속이 참 쓰리더라고요" 비싼 돈 주고 사입힌 정장을 화동에만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반려동물 스튜디오를 예약하고 감자 독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비싸게 산 정장 뽕을 뽑아야죠! "
예상치 못한 난관도 있었다. 화동의 임무는 예물을 신랑 신부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강아지는 손이 없다. 우리가 손으로 부르는 부위도 사실 바닥을 짚고 뛰어다니는 발에 불과하다. "반지 케이스를 감자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무거울 것 같아서 정장을 주문할 때 작고 가벼운 주머니를 같이 주문했어요. 그리고 그 주머니 안에 반지를 담아 슈트에 옷핀으로 꽂기로 했죠"
산 넘어 산. 두 번째 난관도 있었다. 감자는 페키니즈 견종으로 다리가 짧다. 이대로면 반지를 전달하는 모습이 관객들에게 보이지 않게 생겼다. 이 난관은 풍선으로 해결했다. 반지 모양의 풍선을 주문해서 감자의 몸에 매달았다. 감자가 걸을 때마다 반지가 담긴 풍선이 살랑살랑 움직였다. 마치 관객들에게 "나 반지 전달하러 가고 있으니 집중하세요"라며 말하듯이 말이다.
의상이 완벽하게 준비됐으니 이제 연습만이 살길이다. 감자의 입장곡은 '강아지 차차'로 선곡했다. 그리고 수시로 '강아지 차차' 노래를 틀어주며 감자를 불러 간식을 줬다. "이 노래가 나오고 주인이 나를 부르면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훈련했어요" 하지만 파블로프의 개와 같은 원리는 감자에게 없었다. "수백 번을 연습했으니 이 노래가 나오면 반사적으로 우리한테 달려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감자가 머리가 좋은 건지.. 간식이 없다는 걸 눈치채면 절대 저희에게 안 오더라고요." 결국 결혼식 당일 영식 씨는 주머니에 간식을 넣고 신랑 입장을 했다. 뒤이어 나올 감자를 간식으로 유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네 다리로 뚜벅뚜벅 입장! 하객에게 좋은 추억
대망의 결혼식 당일. 감자 전용 가방순이도 섭외됐다. 보통 가방순이는 신부에게 들어오는 축의금을 관리하고 신부의 편의를 봐주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은수 씨 결혼식에서의 가방순이는 감자를 케어하는 일을 도맡았다. 감자가 워낙 순한 성격이라 짖거나 소변을 누는 등의 돌발적인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단두종이라는 견종 특성상 더위를 무척이나 견디기 힘들어했다.
정장까지 입었던 터라 가방순이는 감자에게 부채질을 해주느라 일을 다 봤다. 정장을 벗겨주고 물도 먹여주고 난리도 아니었다. 물론 식장의 사전 지침에 따라 감자는 유모차 안에만 있었다. 유모차 앞에는 "결혼축하하개, 잘 살자 멍멍"이라는 감자의 인사말을 담은 화환이 붙었다.

식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감자는 영식 씨와 함께 리허설을 했다. 버진로드가 길지 않은 편이라 곧잘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영식 씨는 한숨 돌리며 신부대기실로 들어와 은수씨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우리 감자 오늘 잘 할 것 같아"
하지만 막상 식이 시작되자 감자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리허설 때와는 다르게 사람이 엄청 많아지니까 갑자기 감자가 두려움을 느꼈나 봐요. 화동 입장시간이 돼서 버진로드에 올려놓으니 황급히 내려가더라고요. 그때 우리 부부는 생각했어요. 아. 이거 큰일났다" 다시 버진로드에 감자를 올려 놓으니 이제는 망부석이 됐다. "입장"이라는 사회자의 구령은 들은 체 만 체. 엉덩이를 사정없이 밀어 대도 감자는 꿈쩍 않고 뒷걸음칠만 쳤다.


결국 결혼식 장내는 웃음바다가 됐다. 하객들은 감자의 '화동 성공'을 위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응원했다. 그리고 심기일전. 가방순이에게 안기려던 감자가 버진로드에 다시 섰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영식 씨가 감자를 힘차게 불렀다. 주머니에 있던 간식도 세차게 휘저으며 냄새를 풍겨댔다. 그러자 감자가 버진로드를 위풍당당 걷기 시작했다. 감자는 반지 주머니를, 영식 씨는 간식을 등가교환하며 화동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반려동물은 가족, 결혼식이라고 예외는 없죠
한숨 돌리는 감자를 애타게 찾는 순서가 또 있었으니. 친지 가족과 사진 찍는 순서. 감자는 은수씨 어머님의 품에 안겨 제일 앞에서 사진을 남겼다. "감자도 엄연한 우리 가족이잖아요. 제 결혼식에 함께 사진을 찍어야죠"
결혼식이 끝나고 은수 씨 휴대폰은 쉴 틈 없이 울렸다. 결혼식에 찍은 사진과 못다 한 축하 인사가 전해졌다. "강아지 화동의 장점이자 단점이 저희 둘 결혼식인데 감자가 주인공이 됐더라고요. 사진도 감자를 찍어준 사진이 참 많았고요. 잠깐 감자한테 질투도 나더라고요 (웃음). 하지만 이벤트적인 요소로 참신해서 저희 결혼식에 오신 분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드린 것 같아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물론 강아지 화동을 위해 희생해 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저희는 다행히 감자를 케어해줄 사람이 있었고, 또 가족과 친척들도 감자를 좋아해서 돌아가면서 봐주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날 공교롭게도 뒤 타임 예식이 없어서 큰 트러블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런 점만 신경 쓴다면 강아지 화동은 정말 추천합니다! 그리고 감자야, 우리 결혼식 도와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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