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운석의 전통주 인문학] <3> 한영석 누룩명인 “좋은 누룩이 좋은 술 만든다”

공장형과 달리 20kg만 띄워, 2020년 '명인' 인정
밀·쌀뿐 아니라 백국·녹두국…독창적 레시피 개발
포도·매실 향 동시에 나는 '한영석 청명주' 첫 출시

한영석 누룩명인이 누룩실에서 쌀누룩을 선보이고 있다.
한영석 누룩명인이 누룩실에서 쌀누룩을 선보이고 있다.

"좋은 누룩을 써야 좋은 술을 빚을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를 입증하기 위해 대구에서 고속도로를 3시간이나 달려 도착한 곳은 전라북도 정읍에 있는 '한영석의 발효연구소'. 건너편으로 내장산국립공원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앞쪽엔 큰 저수지가 내장산을 담고 있다. 이미 풍경만으로도 좋은 누룩과 좋은 술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장소다.

'한영석의 발효연구소' 한영석(53) 대표는 국내 누룩명인 1호다. 2020년 7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사)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로부터 전통발효 누룩 명인으로 지정됐다.

먼저 누룩 발효실을 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누룩이길래 자신의 누룩으로 만든 술인 '한영석 청명주'가 그렇게 인기가 있는지 궁금했다. 지난해 4월, 자신이 만든 누룩으로 '한영석 청명주'를 출시하자마자 SNS에서는 "맛있다"며 난리가 났다. 1차로 내놓은 청명주 3,200병이 금새 동이 나버렸다. 생산량을 6천병으로 늘려도 출시할 때마다 하루 이틀 만에 다 매진되었다. 좋은 누룩으로 만들어야 좋은 술이 나온다는 걸 스스로 증명한 셈이었다.

◆누룩을 비스듬하게 두면 환기가 잘돼

누룩발효실에 들어서자 1부터 번호가 붙은 누룩실이 몇 개 나란히 붙어있고 누룩실마다 다른 누룩을 띄우고 있는 중이었다. 밀누룩과 쌀누룩을 띄우는 누룩실은 규모가 작은 편이었는데 다른 누룩공장들과 달리 누룩을 다닥다닥 쌓아두지 않고 한 개씩 듬성듬성 놓아두었다.

이게 좋은 누룩을 만드는 비결이냐고 묻자 한 대표는 "대량 생산하는 공장형 누룩실은 이 정도 크기에서 1톤 정도의 누룩을 만들지만 우리는 여기서 200kg의 누룩만 띄운다"며 "누룩은 발효하면서 열을 내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만 누룩실의 온도를 일정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좁은 누룩실에서 많은 누룩을 띄우면 한창 발효 중일 때는 실내온도가 60℃까지 올라가게 되고 제대로 된 누룩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했다.

누룩실은 자동으로 온도를 조절하고 환기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온도는 30℃ 정도. 누룩은 45도 각도로 가느다란 새끼줄에 걸쳐져 있다. 한 대표는 "누룩을 수평으로 놓으면 바닥면은 공기가 통하지 않아 썩는다"며 "누룩을 하나씩 비스듬하게 두면 환기가 잘 되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영석 누룩명인이 누룩실에서 누룩을 들어보이고 있다. 듬성듬성 놓인 누룩은 일정한 온도와 습도 하에서 발효 중이다.
한영석 누룩명인이 누룩실에서 누룩을 들어보이고 있다. 듬성듬성 놓인 누룩은 일정한 온도와 습도 하에서 발효 중이다.

◆누룩명인으로 지정받아

한영석 대표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40대 초반에 척수염을 앓으면서 건강을 되찾기 위해 발효식초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식초를 공부할수록 좋은 술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고 2011년부터 2년간 꼬박 서울의 한 전통주교육기관의 프로그램을 모두 섭렵할 정도로 술을 공부했다.

결국은 좋은 술맛은 누룩이 좋아야 한다는 걸 깨닫고 누룩공부에 매달렸다. 누룩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재료를 바꾸고 다른 방법으로 만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10년을 누룩에 매달린 끝에 2020년 누룩명인으로 지정받았다. 누룩 디디는 기계와 디디는 방법에 관한 특허도 취득했다.

이제 전통누룩은 거의 다 복원을 해냈다. 지금도 밀누룩과 쌀누룩 뿐 아니라 밀가루에 찹쌀가루를 더한 백국, 내부비전국, 향온국, 녹두국, 백수환동국, 분곡을 만들어 내고 있다. 고문헌에 나오지 않는 독창적인 그만의 누룩도 개발해냈다. 쌀가루에 녹두를 20% 섞은 '향미주국'이다.

누룩명인에 이 정도 수준이면 만족할 만한데도 그는 아직 누룩 만드는 수준이 60%정도에 다다랐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제 겨우 누룩을 썩히지 않고 띄울 정도라고 했다. 이젠 누룩을 어떻게 띄우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술맛과 향을 더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룩의 완성은 빚고 싶은 술을 제대로 빚을 수 있는 정도의 누룩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그는 요즘 증류주에 매달리고 있다. 청명주의 향을 소주에 그대로 담아 만들어내고 싶은데 어떤 누룩을 어떻게 띄우면 좋을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의 목표는 세 가지다. 그가 빚은 술이 대통령실의 만찬주로 선정되는 것과 우리술품평회에서 대상을 받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프랑스 와인, 일본 사케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주(그는 이것을 국주라고 표현했다)를 빚는 것이라고 했다. "전통누룩으로 빚는 한국술이 세계 속에서 술의 한 축을 세울 날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전통누룩명인 한영석 대표가 빚은 약주 시리즈. 왼쪽부터 청명주 배치8, 백수환동주, 호산춘 두 병, 동정춘 두 병, 청명주 배치8 두 병, 하향주 두 병.
전통누룩명인 한영석 대표가 빚은 약주 시리즈. 왼쪽부터 청명주 배치8, 백수환동주, 호산춘 두 병, 동정춘 두 병, 청명주 배치8 두 병, 하향주 두 병.

◆과일향에 깔끔한 산미가 일품,한영석 청명주

깔끔한 과일향과 맑은 신맛, 그리고 은은한 단맛. 분명 쌀, 물, 누룩만으로 빚은 전통주인데 누룩취는 전혀 없다. 입 안에 감돌던 산미는 어느덧 사라지고 여운만 남는다. '한영석의 발효연구소'에서 만난 한영석(53) 대표는 자신의 누룩으로 빚은 청명주 한 잔부터 권했다. 추석 전 출시를 위해 채주를 하고 있던 '한영석 청명주' 10배치였다.

지난해 봄 처음으로 선을 보인 한영석 청명주는 술을 빚는 순서에 따라 배치 1, 배치 2, 배치 3 등으로 구분해서 라벨링을 한다. 같은 공간에서 띄웠던 누룩에 따라 배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10배치는 추석 전 출시를 위해 녹두국으로 빚은 청명주다.

한 모금 마신 한영석청명주 10배치는 포도향이 나는 듯도 하고, 매실향이 나는 듯도 했다. 어느 순간엔 야생화 꽃밭에 앉아 있는 듯 꽃향이 스쳐지나가기도 한다. 전통누룩으로 만든 술에서 이런 과일향과 꽃향이 나다니 놀랍기만 했다. 이전에 마셔본 4배치와 6배치와는 또 다른 맛과 향이었다.

누룩명인인 그는 자신이 만든 누룩의 우수성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누룩이 제대로 띄워졌는지를 알려면 술을 빚어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통누룩은 대량으로 생산하는 상업양조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좋은 누룩이라면 얼마든지 맛있는 술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기 위해 청명주를 만들었다. 기존에 있던 중원당청명주(충북 무형문화재)와 구분하기 위해 '한영석 청명주'라는 상표를 사용했다.

2022년 4월 한영석청명주를 처음 출시하자마자 SNS에서는 이를 구하기 위해 난리가 났다. 3200병이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이후에 생산량을 늘려 1개월에 6000병을 생산하지만 여전히 품귀현상을 보인다. 9배치까지 출시 하루 이틀 만에 전부 매진되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연발효시키는 과정에서 나오는 누룩 속의 여러 향들이 술에 스며든다"는 그는 자신이 만든 술로 자신의 누룩이 우수하다는 걸 증명해냈다. 전통누룩으로 상업양조는 할 수 없다는 말도 이제는 어느 누구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최근에 나온 한영석 청명주 배치9. 쌀누룩으로 빚었다.
최근에 나온 한영석 청명주 배치9. 쌀누룩으로 빚었다.
최근에 나온 한영석 청명주 배치9. 쌀누룩으로 빚었다.
최근에 나온 한영석 청명주 배치9. 쌀누룩으로 빚었다.

정작 시중에서는 누룩보다 한영석 청명주에 더 관심이 많다. 배치마다 조금씩 다른 맛과 향 때문이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깨끗한 산미이다. 그가 밝히는 맑은 산미의 비결은 두 가지다. 먼저 고두밥 찌기 전 쌀을 물에 오랫동안 불리는 산장법이다. 밑술을 빚기 전부터 덧술용 쌀을 물에 불리기 시작한다. 겨울에는 거의 10일 정도 불린다. 이렇게 하면 쌀의 수용성물질이 빠져나가면서 효모의 활성도를 낮출 수 있고 신맛을 내게 된다.

저온발효도 청명주의 독특한 신맛을 내는 데 일조한다. 발효실의 온도를 13℃로 유지해서 산장법에 이어 한 번 더 효모의 활동을 늦추는 것이다.

요즘 청명주를 맛보기 위해 외국에서 견학을 많이 온다. 5월엔 프랑스에서 5팀이 다녀갔다. 싱가포르와 호주, 이탈리아 등에서도 다녀갔다. 프랑스팀은 올 때마다 "정말 포도를 넣지 않은 거냐?"고 묻는다. 포도를 넣지 않았는데 어떻게 포도향이 나는 건지 의아해한다. 그들은 쌀, 물, 누룩만 쓰는데 과일향이 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전통누룩을 사용한 특별한 술들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빚는 방법을 달리하면서 한국만의 은은한 향이 나는 술을 빚어보고 싶습니다".

박운석
박운석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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