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나는 솔로’, 리얼리티쇼 시대가 부른 역대급 반응

SBS 플러스·ENA ‘나는 솔로’, 달라진 연애 리얼리티의 맛

최근 SBS플러스와 ENA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나는 솔로' 16기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어디서든 "그거 봤어?"하고 묻고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뒷이야기를 수다로 풀어놓는다. 평이해보였던 이 연애 리얼리티가 갑자기 이런 주목을 받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나는 솔로' 봤어?

"'나는 솔로' 보셨어요? 진짜 재밌어" "나는 (16기가) 역대급이야. 최고의 회차. 아니 21세기 최고의 회차." 유튜브 채널 '채널 십오야'에 최근 올라온 '첫 신입 PD 공개채용' 영상에 갑자기 '나는 솔로' 이야기가 툭 튀어 나온다. 나영석 PD와 이명한 대표 그리고 신원호 PD, 이우정 작가 같은 국내 예능과 드라마에서 막강한 저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 회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왜 갑자기 '나는 솔로'가 나온 걸까. 그 영상은 신입 PD 공개채용을 알리는 용도로 찍은 것이었지만, 이를 어떻게 찍을까 고민하던 PD들이 회의를 하는 장면이 나왔고 그 안에 갑자기 '나는 솔로' 이야기가 들어가게 된 것. 두 PD가 '나는 솔로' 16기가 역대급이라는 이야기를 하자 그 이야기를 들은 또 한 명의 PD는 그걸 굳이 수첩에 적어 놓는다. 아마도 이 장면은 지금 현재 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어떤 식으로 화제와 주목이 이어지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솔로지옥'이 글로벌 반응을 일으키고 채널A '하트시그널'이나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연애 리얼리티의 붐을 일으키고 있을 때에도 '나는 솔로'는 어딘가 소소한 마니아 예능처럼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일단 채널이 SBS플러스나 ENA 같은 케이블이라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낮았고, 여타의 연애 리얼리티와 비교해 소박해 보이는(?) 스케일이 그랬다. 그래서일까. 때깔이 뽀샤시한 '솔로지옥'이나 '하트시그널', '환승연애'와 비교해 저들 프로그램들이 일종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연애 리얼리티라면, '나는 솔로'는 마치 CCTV를 통해 적나라한 실제를 들여다보는 현실 버전의 연애 리얼리티라는 정체성이 생겼다. 출연자들도 훨씬 우리 주변에서 볼 것만 같은 그런 인물들이 출연하고,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도 훨씬 리얼하다.

게다가 '나는 솔로'는 과거 연애 리얼리티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짝'의 형식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어딘가 투박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었다. '짝'에서는 남자1호, 여자1호 이렇게 지칭했던 걸 '나는 솔로'에서는 영철, 옥순, 영숙 이런 식으로 부르고 있었고, 애정촌은 '솔로나라'로 불리게 됐지만, 그들이 한 곳에서 합숙하며 때때로 선택의 미션을 치르고 포상처럼 데이트를 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트렌디하지 않은 옛 프로그램의 느낌이 났지만, 역시 연애 리얼리티의 힘은 출연자들에서 나온다는 걸 이번 16기는 확실히 보여줬다. '돌싱특집'으로 꾸려진 16기는 출연자 하나하나가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나는 솔로' 16기 영상 캡처.
'나는 솔로' 16기 영상 캡처.

◆'나는 솔로'에 생겨난 새로운 관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는 이혼을 경험한 모든 출연자들과 달리 홀로 사별을 경험한 영식이 먼저 눈도장을 찍었다. 대장암으로 아내를 먼저 보내고 아이를 홀로 키우며 많이 울었다는 영식의 사연에 출연자들 모두가 눈물을 쏟아내는 먹먹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래서 영식의 이야기가 계속 주목될 줄 알았지만, 두 번의 이혼 경험을 한 광수와 서양화가로서 스포츠카를 끄는 취미를 갖고 있다는 옥순, 미국 생활을 해 한국 문화가 오히려 익숙하지 않은 상철과 무용강사로서 전 남편과 딱 한 번 합궁으로 아이가 생긴 후 말 그대로 산전수전, 공중전을 치르며 살아왔다는 영숙의 밀고 당기는 러브라인이 생겨나면서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공고해보이던 러브라인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건, 일부 출연자들의 오지랖에서 비롯된 괜한 충고가 만들어낸 파장 때문이다. 영숙은 그 중심에 선 인물로 옥순의 마음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광수에게 "경각심을 가지라"는 말 한 마디로 파국을 불러 일으켰다. 그 말에 흔들린 광수가 한 일련의 행동들이 옥순과의 관계를 흔들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영숙만이 아닌 남자 출연자인 영철 또한 광수를 챙겨준답시고 한 일련의 말들이 영향을 미쳤다. 흥미로운 건 누군가 던진 한 마디가 연쇄작용을 일으켜 관계에 파장을 일으키는 이 변화들에 대해 시청자들이 '뇌피셜'이니 '가짜뉴스'니 하는 말들을 쏟아냈다는 사실이다. 즉 시청자들은 이 연애 리얼리티를 보면서, 남녀 사이의 러브라인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우리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쉽게 말 한 마디에 영향을 받는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지점은 '나는 솔로'가 찾아낸 의외의 재미요소가 됐다. 연애 리얼리티에서 인간관계 지침서 같은 관점이 생겨난 것이다.

'나는 솔로' 16기 영상 캡처.
'나는 솔로' 16기 영상 캡처.

◆어느새 익숙해진 리얼리티쇼의 현재

'나는 솔로'의 남규홍 PD는 이미 연애 리얼리티의 원조격인 '짝'을 제작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여기서 '짝'이 중요한 건, 이 프로그램이 사실상 국내에 일반인 리얼리티쇼의 문을 열었던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이 첫 방영된 2011년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 리얼리티쇼는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일반인들의 침실까지 들여다보는 리얼리티쇼의 시대가 열렸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사생활을 들여다본다는 사실마저도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이것은 지상파 시대에 프로그램이 방심위의 관리 대상이 됨으로써 넘지 못할 선처럼 여겨진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 선을 넘은 게 바로 '짝'이다. 처음 파일럿으로는 일종의 '실험'처럼 남녀가 애정촌이라는 공간에 모여 어떤 관계의 변화들이 만들어지는가를 들여다보는 교양 프로그램의 틀을 갖고 시작했지만, 정규방송으로 자리하면서는 본격적인 리얼리티쇼의 양상을 띠게 됐다. 그 후 '나 혼자 산다' 역시 '전체 가구 수의 4분의 1'인 1인 가구 시대를 명분으로 전면에 내세우면서 연예인 리얼리티를 시작했고 조금씩 '관찰카메라'라는 색다른 지칭을 활용하며 리얼리티쇼가 우리의 방송가로 들어오게 됐다.

'짝'이 방영됐던 당시만 해도 리얼리티쇼의 자극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은 않았고 그건 출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방송이 나오고 나서 갖가지 논란과 폭로가 이어지는 상황이 반복됐고, 결국은 출연자 중 한 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서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현재는 어떨까. 이제 리얼리티쇼는 방송의 중심 트렌드로 자리했다. 출연자들에게 쏟아지는 논란도 이제는 일종의 '관심'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실제로 '나는 솔로' 16기가 만들어낸 갖가지 구설과 논란들에 대해 출연자들이 줄줄이 사과문을 내는 상황이 발생하곤 하지만, 이들은 또한 개인 SNS를 통해 자신들의 심경이나 현재의 일상을 공개하며 이러한 논란 또한 관심과 화제로 바꾸는데 익숙하다. 미국으로 돌아갔던 상철이 다시 귀국해 영수, 영철과 인증 사진을 찍어 올리고, 옥순이 스포츠카를 몰고 드라이브를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올리는 식이다.

시청자들은 이제 '나는 솔로'를 프로그램 안에서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출연자들의 개인 SNS까지 함께 들여다보며 그들의 실제 관계가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궁금해 한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온 상철이 영숙과 만날 것인지 만나면 그 사진을 또 개인 SNS에 올릴 것인지 같은 걸 궁금해 하는 식이다. 이 변화된 상황이 말해주는 건, 이제 우리도 어느새 리얼리티쇼에 그만큼 익숙해졌고, 그래서 방송의 안과 밖이 투명하게 연결되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솔로'가 연애 리얼리티에서 인간관계의 리얼리티로까지 확장됨으로써 최고의 화제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에는 우리가 리얼리티쇼를 바라보는 감수성 변화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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